지난 3월 '인천 가치재창조 선도사업'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강화군은 '강화소창직물 육성사업'을 가지고 나왔다. 프레젠테이션 직전, 옆자리의 심사위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소창이 뭐죠?" 답이 짧게 왔다. "기저귀".
전등사, 고인돌, 마니산 등으로만 알았던 강화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강화군을 방문해 '강화 직물산업'에 대해 취재했다. 1916년에 강화직물조합이 설립될 만큼 '청정1급 섬' 강화에 섬유 생산시설이 많았다. 365일 물레 돌리는 소리와 직조기 소리가 강화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말리기 위해 들판에 걸어 놓은 하얀 천들은 마치 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길처럼 보였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강화 여인들의 손재주가 한몫 했다. 화문석 돗자리를 짜던 손은 400여 년 전부터 직물을 짜서 내다팔 만큼 섬세했고 탁월했다. 두 집 건너 한 집씩 수족기로 인조견을 짜면서 '강화비단'이란 말이 생겼다. 1930년대 강화는 전국의 갑부 고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직물 사업자들이 중심이 돼 하점면에 공설운동장을 건설할 정도였다. 육지의 웬만한 도시보다 먼저 전기와 전화가 들어온 것은 순전히 직물산업 때문이었다.

70년대까지 제일모직이나 선경보다 규모가 큰 공장이 있을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 '웸블리넥타이'는 한때 멋쟁이들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었다. 그 최고급 넥타이는 '메이드 인 강화' 제품으로 심도직물에서 생산했다. 나일론 등 인조 직물이 등장하면서 역직기 소리는 급격히 희미해졌고 직물 노동자들은 섬을 떠났다. 현재 소창 공장 11곳이 가내 수공업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소창은 이불 안감, 손수건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번 공모전에서 강화군은 우수상을 받았다. 강화군은 소창산업 육성과 관광 상품화를 위해 옛 평화직물 공장을 보수해 홍보·체험 공간으로 활용한다. 강화군의 소창 사업은 아직 기저귀를 찬 유아의 모습이다. 인천의 자매도시 일본 기타큐슈의 특산직물 '고쿠라오리(小倉織)'의 시작도 이러했다. 한글과 한자이지만 두 지역은 공교롭게도 '소창'이란 단어를 쓴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