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중국 칭다오를 여행할 때 서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픈 마음에 한·중페리를 이용했다. 일정을 마치고 인천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색다른 광경을 목격했다. 팔미도 해상을 막 지나는 데 작은 보트 한척이 빠른 속도로 페리 좌현으로 붙었다. 보트에는 'PILOT'이 선명하게 쓰였다. 보트에서 한 사람이 줄사다리를 타고 커다란 페리로 오르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내려진 10m 넘는 줄사다리는 실오라기처럼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갑판의 승객들은 그 '진기한' 장면을 숨죽여 봤다. 그는 도선사(導船士)였다.

도선사는 대형 선박이 항구에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선장 대신 키를 잡는 전문직이다. 그들은 바다의 손금을 본다. 물길과 골을 살펴보며 외국선박을 안전하게 입출항시킨다. 천길 물속은 쉬 알 수 없다. 그들이 필요한 절대적 이유다. 도선사의 역사는 기원전 1000년 경 고대 페니키아에서 활동했을 만큼 오래되었다. 1492년 신대륙에 콜럼버스의 첫발을 내딛게 한 산타마리아호에는 도선사가 타고 있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함대에 참패한 것은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란 설이 있다.

도선사는 일반인들에게 여전히 낯설다. 서울 우이동에 있는 사찰 '도선사'에는 한국도선사협회로 갈 전화가 종종 잘못 걸려온다고 한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직업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도선사(pilot)가 판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톱10' 중 양복을 입지 않는 유일한 직업이다. 인천항에는 옥덕용(ID : OD) 부터 김현수(KC) 까지 40명의 도선사가 있다.

얼마 전 인천항에서 활동하며 한국도선사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배순태 옹이 향년 93세로 영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때마침 인천시립박물관은 조사보고집 '인천항 사람들'을 발간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선사 유항렬의 이야기도 실렸다. '흔히들 인천은 항구도시라 말하지만 인천항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깊게 고민한 적은 없는 듯하다.' 책의 맺음말이다. 그냥 허투루 들으면 안 되는 구절이다. 이제 인천은 '항구 인천'을 더 알아야 한다.

/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