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는 교과서 외엔 책이 거의 없었다. 동네에 '칠공주 반장댁'이 있었다. 그 댁의 7녀1남 중 사내 녀석이 필자의 친구였다. 화수동 인천공작창에 근무하는 친구 아버지는 우리 동네 인테리였다. 오로지 그 1남을 위해 방 벽 한쪽을 위인전집과 세계명작동화책으로 꽉 채웠다. 친구는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대출불가'였기 때문에 필자는 매일 그 집 방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읽었다. 그때 수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키웠다. 그 덕에 학교 대표로 자유공원 광장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몇 차례 참가했다.

대낮(白日)에 시재를 겨룬다하여 그 이름이 생겼다는 '백일장'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한다. 지난 주 토요일 제32회 새얼백일장이 숭의동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렸다. 1986년 처음 개최한 이래 연인원 13만7000여명이 참가한 전국 최대 규모의 순수문예축제다. 올해도 전남, 경남은 물론 멀리 제주도 등에서 4000여명이 산 넘고 물건너와 한데 모였다.

의식주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의식주폰' 시대가 왔다. 폰생폰사, 스마트폰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그들이 그 날 만큼은 폰 대신 펜을 쥐었다. 글이란 말의 어원은 '긁는다'는 뜻이다. 글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말은 사라지지만 긁은 것은 남는다. 행사 이후 그해 백일장 작품집 <새얼문예>가 발행된다. 수상 작품과 심사평 그리고 참가자 전원의 명단이 수록된다. 새얼백일장의 특징 중 하나다.

상 받는 것은 다음 문제다. 잠시나마 서로 실력을 겨루어보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그것이면 됐다. 얼기설기, 삐뚤빼뚤. 하얀 원고지에 마음껏 거칠 것 없이 멋대로 쓰는 그들이 옳은 것이다. 그날 대형 전광판에 뜬 글쓰기 주제어는 '도서관, 단짝, 나의 스타, 겨울, 소리, 기차역' 등이었다. 지독하게 사납고 염치없는 언어가 난무하는 요즘. 아직도 이런 달달하고 친근한 단어들이 남아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사족 하나 : 새얼백일장의 정식 명칭은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이다. 아버지들은 기사 역할에 그친다. 이제 아버지에게도 핸들이 아닌 펜을 달라.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