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원형광장·야외무대 철거, 지하 211면 규모 추진
▲ 2009년 4월22일 삼덕공원 개장식에 이필운 안양시장, 전재준 삼덕공원 기증자. 시민 1000여명 등이 참석해 기념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안양시
안양시가 시민공원으로 조성해달라며 기부한 수백억대 공장부지에 주차장 건설을 추진해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논란은 전임시장때에도 같은 기부 부지에 주차장 건설을 추진했다가 기부자와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어 시가 기부자의 유지(遺志)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9일 안양시,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2003년 7월 삼덕제지(현 삼정펄프) 故 전재준 회장은 1만여㎡의 규모의 안양4동 782-19 일원 제지공장 부지를 시에 기증했다.

시는 전 회장과 합의하에 공장터에 소나무를 심고 쉼터 등 시설을 설치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삼덕공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안양시는 삼덕공원에 주차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도덕성 논란 등으로 시민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달 시는 중소기업청의 '전통시장활성화방안'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총 13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공원 지하에 2층 규모, 211면의 주차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중앙시장을 이용하는 유동인구가 2만여명에 이르고, 일대 상점 수도 1100여개에 달해 주차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시의 방침에 시민단체들은 '순수 시민공원'을 원했던 기증자의 의도와 배치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안양지역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시민단체연대회의 관계자는 "고 전 회장이 남긴 삼덕공원은 한국에는 드문 기업인이 지역사회와 시민에게 재산을 기부한 역사를 담고 있다"며 "그러나 시의 주차장 건설은 기증자를 우롱하는 처사일뿐더러 기부문화가 확산되길 바란다는 태도라고 볼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시민단체연대회의는 이달 중으로 주차장 건설 철회를 요구하는 등 반대운동을 본격 나설 예정이다. 이들은 공모사업시행자인 중소기업청에 해당 부지의 선정취소를 촉구하기로 했다.
유가족과 삼정펄프 관계자도 최근 시와 논의 과정에서 주차장 건설은 기증자 의도와 어긋난 행위라며 반대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2005년 전임 시장당시에도 같은 방식으로 주차장 건설을 추진하려다 기부 당사자인 故 전 회장과 시민사회단체에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
시 관계자는 "안양중앙시장이 전국규모의 전통시장이라 주말이면 지역 일대 전체가 주차난이 심각하다"며 "이번 주차장 건설은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초점에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매연 뒤덮이라고 부지 기증한 것 아니다"
故 전재준 삼덕제지 회장, 생전 뜻 밝혀… 시, 12년전에도 강행 '논란'

"안양시민 여러분! 울창한 숲의 새소리와 신선하고 쾌적한 공기가 있는 자연공원을 원하십니까? 자동차 600대의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한 주차장 공원을 원하십니까?"
2005년 12월, 82세의 고령의 기업가는 자신이 기부한 땅에 주차장을 건설한다는 시의 계획에 분노하며 시민들에게 외쳤다.

황해도 개성 출신의 고(故) 전재준 회장은 지업상, 성보실업, 동남교역 등을 제지업으로 기업을 일궜다. 1961년부터 인쇄용지 제조회사인 삼덕제지를 경영해오다 회사가 커지면서 삼정펄프를 세웠다.
전 회장은 2003년 7월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에 위치한 300억원 상당의 공장부지를 시에 기증했다. 토지 소유권은 그해 11월 시에 넘겼다.

이 같은 기부에는 43년 동안 안양의 중심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공해, 소음으로 시민들에게 준 피해에 대한 사죄의 뜻과 감사의 마음을 돌려준다는 한 기업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한 기업인의 순수한 기부의 뜻은 2005년 시의 주차장 건설계획에 산산히 깨져나갔다. 당시 신중대 안양시장이 전 회장의 기부한 시민공원 지하 2개 층에 600~700여대 규모의 주차장 건설을 추진한다고 돌연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의 계획에 당시 故 전 회장이 기부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히고, 시민사회단체는 서명운동까지 예고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전재준 회장은 삼정펄프(옛 삼덕제지) 회사 홈페이지와 안양 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의 마지막 소원은 삼덕제지 공장이 '시멘트 위의 공원'이 아닌, 흙냄새 나고 숲이 울창한 자연공원으로 조성돼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는 것"이라며 "매연과 소음으로 뒤덮인 주차장으로 공원을 기증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발이 이어지자 결국 그해 신중대 안양시장은 시민과 기증자에게 사과하고, 주차장 건설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안양부시장은 현 안양시장인 이필운 시장이다.
이후 공장 부지에는 시민공원인 '삼덕공원'이 들어섰고, 2010년 전 회장은 별세했다.
삼덕공원이 시민공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2014년 11월 3일 시는 전 회장의 기부의 뜻을 내세우며 '안양시 기부의 날'로 선포했다.

하지만 12년만에 당시 부시장이었던 이필운 현 안양시장에 의해 또다시 주차장 건설에 따른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시는 2017년 초 중소기업청 공모사업에 삼덕공원 지하주차장 건설 계획으로 참여했다.
안양시는 2018년 말까지 삼덕공원 내에 이용성이 떨어지는 야외무대와 원형광장을 철거한 뒤 주차면적 211면을 설치, 그 위로 1m 이상 흙을 덮어 나무공원으로 조성하는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