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선은 갑신정변(1884년 12월)의 여파로 매우 혼란한 상태였다. 미국 대리공사 폴크는 이들 내외가 곧장 한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만류했고, 이들 부부는 한동안 제물포 대불호텔에 머물렀다.
아펜젤러가 기록을 남긴 덕분에 제물포 대불호텔(1883)은 서울 정동의 손탁호텔(1902)에 비해 앞선 국내 최초의 호텔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인천 중구청은 대불호텔 옛 터에 이 건물을 다시 신축했다. 그런데 문제는 본래 외벽만 벽돌로 쌓고 내부는 목조였던 건물을 현대식 철골 콘크리트로 지었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이 역사적 건축물을 신축하는 근거 자료는 오래된 흑백사진 두 장뿐이었다. 대불호텔 건물이 아주 오래전에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이 건물은 1883년에 세워진 이래 지난 1978년까지 95년 간 그 자리에 존재했지만, 당시 누구도 이 건물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
그 결과 건물을 부순지 40년만에 25억8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다시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복원이 아닌 신축공사였다. 2000년대 이후 인천 개항장 일대의 역사적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재산권 문제와 얽혀 지금 이 순간에도 인천의 많은 근현대 건축물들이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밀어버리고 없애버린 뒤 후회하면 너무 늦는다.
인천에는 배다리 일대를 비롯해 극동방송 사옥, 동일방직공장, 부평의 영단(營團)주택 등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근현대 건축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기존 건물을 부순 뒤 복원이랍시고 새롭게 신축하는 못난 짓을 저지르기에 앞서 인천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근현대 문화유산을 잘 지키는 일에 지자체가 앞장서야 한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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