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모두가 곱고 값지다. 그것들에는 기계제품 하고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고 대개가 자연에서 소재를 응용한 것들이어서 일종의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그런가 하면 그것들에서는 만들어낸 사람들의 체온이 느껴지고 그들 장인들의 심성과 감정 그리고 사색이 배어 나온다. 게다가 과학과 기계문명이 발달한 오늘날 그것들은 점차로 사라져 귀해지고 있다. 목공예 자수 화문석 조화는 그래서 소중하고 편물도 그것들 중의 하나이다.

 편물이란 털실을 바늘로 엮어 옷을 짜 만드는 뜨개질이다. 지난 가난했던 60년대 크게 유행했었다. 편물이 가난의 상징은 아니나 아직 패션이 다양화하지 못하고 그것이 복식의 전부 처럼 여겨지던 시기 너도 나도 그것을 착용했다. 아동복 숙녀복 남성용은 물론 더러 웨딩드레스 수영복 까지도 그랬다. 지금도 털실 재킷이나 스웨터 차림을 대하면 우아하고 둔중스러워 보인다.

 그때 거리마다 「편물」이란 간판이 걸린 점포가 많았다. 직장을 달리 얻기 어려웠던 시절 젊은 여성들이 학원에서 편물기술을 습득 기계를 마련 삯일을 했는데 쏠쏠하게 재미를 보기도 했다. 서민가정에서도 주부들이 틈틈이 짬을 내어 손으로 뜨개질을 해서 가계에 보탰다.

 편물의 기원은 직물보다 오래라고 한다. 수렵이나 어로에서 이용되었을 편물이 의복에 사용된 것은 이집트의 샌들용 양말에서였다. 현재와 같은 뜨개바늘로 뜨는 방식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16세기 기계화가 시도되어 1589년 영국의 한 목사가 발로 밟아 작동하는 편물기를 발명했다. 오늘날 털실이라면 화학섬유가 대종을 이루나 예전엔 그것이 모두 동물성이었다. 이를테면 울(양) 캐시미어(염소) 앙고라(토끼) 캐멀(낙타)등이다.

 이번 금강산 등산길 보도에서 북녘 안내양들의 털실목도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때마침 추위가 몰려와 그녀들도 중무장(?)이어서 흡사 60년대의 우리 사진을 보는 듯 고향의 누이들을 만난 듯하다. 우리는 지금 머플러 숄 등을 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