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노상] 인이젠 인천야구다
[유동현의 노상] 인이젠 인천야구다
  • 이인수
  • 승인 2017.0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女)와 남(男)의 '하루' 분류법. 여자: 햇살 따듯한 날, 쇼핑하고 싶은 날, 화장 잘 받는 날, 산책하고 싶은 날, 왠지 우울한 날, 하이힐 신고 싶은 날 등등. 남자: 야구 중계하는 날, 하지 않는 날. 끝.
인천은 1899년 '베이스볼'이 도입된 도시답게 야구와 친숙했고 시합도 자주 열렸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형과 함께 야구장에 자주 갔다. 송현동 집에서 배다리를 거쳐 도원동 공설운동장까지 걸어 다녔다. 모친은 간식으로 찐 고구마 두 개를 양철 도시락에 싸 주시곤 했다.

어느 여름방학 때 인천에서 열리는 전국고교야구대회를 본 적이 있다.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회원제를 운영했다. 회원의 표식은 작은 뱃지였다. 모친은 한명씩 번갈아 가라고 하시며 하나 값만 주셨다. 형제는 용감했다. 형이 먼저 뱃지를 달고 들어간 후 스탠드로 올라가 담장 너머 아래로 던졌다. 동생은 그것을 주워 달고 가슴 졸이며 입장했다. 야구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의 광성고등학교가 있는 모모산 언덕에 새까맣게 앉아 구경했다. 야구시합을 보고 난 후 선수 흉내를 내고 싶어 아이들을 공터로 불러내 '찜뿌'를 했다. 글러브와 배트가 귀했던 시절이라 투수와 포수 없이 타자가 한 손으로 말랑한 고무공을 공중에 띄워 치는 놀이였다.

인천은 한 때 전국 최강 동산고와 인천고 덕분에 '야도(野都·야구도시)'라고 불렸다. 프로야구 시대가 열린 후 삼미슈퍼스타즈,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 등 연고지팀들이 하위권을 맴돌았던 것과 당시 지역의 정치 풍향이 맞물리면서 야구는 사라지고 '야당 도시'로 둔갑했다. 그나마 잘나가던 현대유니콘스에 배신당하자 '야구를 끊어버린'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뒤늦게 연고팀이 된 SK와이번스에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와이번스(비룡)가 몇 차례 우승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자 인천인들은 문학야구장이 떠나갈 것처럼 '연안부두'를 목청껏 떼창한다. 오늘 저녁 6시30분, 드디어 2017프로야구가 개막한다. 이제 '야도' 인천 남자의 새로운 하루 분류법이 생긴다. 와이번스가 이긴 날과 깨진 날. 인천SK와이번스 파이팅!!

/굿모닝인천 편집장

▲ 인천일보, INCHEONILB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