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한 쪽에 미뤄놨던 소설책을 정말이지 단숨에 읽었다. 양진채의 '변사 기담'이다. 경동 싸리재 애관극장의 변사(辯士) 윤기담과 인천 기생 묘화가 이끌어 가는 소설이다. 변호사와 직업명은 비슷한데 하는 일은 사뭇 다른 변사는 무성영화 시절 영화의 배경과 배우의 대사를 은막 옆에서 관객에게 들려주던 사람이다.

오랜만에 인천 배경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며 제대로 '타임슬립'을 했다. 제물포구락부, 북성포구, 만국공원, 웃터골, 인천역, 터진개, 월미도, 갑문, 인천각, 수문통, 창영동, 화평리 등을 활자를 쫓아 종횡무진 쏘다녔다. 여기에 월미도 포격 피해, 연평도 파시, 성냥공장 여공들의 애환, 상봉루 기생들의 독립자금, 아리랑 나운규와 기생 오향선의 스캔들, 일제의 쌀 반출 등 흥미진진한 팩트의 얼개에 갇혀 도무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변사 기담'은 출간하자마자 곧바로 2쇄를 찍었고 2017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런 흐름을 재빠르게 간파한 모 유명 영화사가 서둘러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학술논문과 연구서에서 맴돌고 있는 개항장을 작가는 '웰 메이드' 이야기로 들려준다. 틀에 갇힌 '최초 최고'의 피로감이 살짝 밀려올 즈음 발간된 이 소설은 한 병의 피로회복제다. 혹자는 "종이책은 쫑났다" "소설은 끝났다"라고 말한다. 서사(敍事)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서사는 떼려야 뗄 수 없다.

2014년 관광공사 통합 시절의 인천도시공사는 '지역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개최한 바 있다. '쇠뿔고개에 별 뜨다' 등 총 115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필자는 심사를 하면서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재미있고 신선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개최 1회로 끝난 것이 못내 아쉽다.

이야기 시장은 이제 소설, 희곡, 만화 등 활자 매체를 떠나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분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인천에는 개항장뿐만 아니라 섬과 바다, 산업화 시대의 공장 등 무수한 이야기 자원이 있다. 이제는 이 자원의 보고에 과감하게 '빨대'를 꽂아야 할 때다. 발굴된 인천 이야기는 충분히 돈이 된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