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를 앞둔 1980년 3월 수봉산으로 데이트를 갔다. 당시 인천에는 마땅한 연애 장소가 별로 없었다. 동인천과 신포동을 맴돌다 자유공원에 오르거나 월미도에 가서 바닷바람 쐬는 게 고작이었다. 좀 멀리 가면 불로목장(서구 심곡동)이나 결핵요양원(현 연수동 인천적십자병원) 정도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갔지만 이곳은 '시외' 같은 분위기였다. 송도유원지는 입장료가 있는데다 호수에서 보트라도 타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공원'이란 타이틀은 붙었지만 수봉공원은 당시만 해도 거의 민둥산이었다. 해발 104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큰 나무가 없어 전망만큼은 아주 좋았다. 이 때문에 산 정상에 화재감시용 망루가 세워져 있었다. 시설도 변변치 못했다. 1972년 세운 현충탑만 삐죽이 솟아 있었고 그 뒤에 소규모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연인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어 평일 대낮 공원은 아주 한산했다. 산 중턱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점퍼에 두 손을 넣은 한 청년이 앞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차가운 물체가 목에 닿는 느낌이 섬뜩했다. 노상강도였다. 흉기는 문구용 칼이었다. 그날의 데이트 비용을 모두 빼앗겼다. 한동안 수봉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곳에 다시 가본 것은 10여년 후 결혼하고 아이 때문이었다. 어린이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수봉공원에 갔다. 그곳에는 1979년 자유공원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 자리에 있던 다람쥐집, 회전목마 등 놀이기구를 떼어 옮겨 만든 '놀이동산'이 있었다.

수봉·주안·부평공원 등이 범죄와 환경 유해성을 예방하는 '안심 공원'으로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러한 기억의 단편이 불현듯 떠올랐다. 수봉산은 '봄의 산'이라고 불릴 만큼 봄꽃이 지천이다. 노상강도를 당했던 산책길은 이제 울창한 숲 터널이 됐다. 인천대공원, 월미산, 자유공원 등이 벚꽃 명소이지만 수봉공원도 이에 못지않다. 올 봄에는 안심 공원으로 지정된 수봉공원으로 벚꽃놀이를 가야겠다. 그나저나 올 봄에는 제대로 상춘(賞春)이나 할 수 있을까. 안심하지 못할 상황이 너무 많은 봄이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