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설문조사를 부탁받을 때가 있다. 요즘은 대외활동, 동아리활동, 중·고등학교 과제물 등의 이유로 대학가는 물론이고 번화가, 지하철 역 근처에서도 설문조사를 하니, 그들에게 붙잡히는 것이 특별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는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에 익숙해진 것뿐이지 그 요청의 내용에 익숙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뭔가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결례일 법하다. 더 문제적인 것은 설문지 응답란에 보통 이름, 나이, 연락처 등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문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남자가 봉사활동 동아리를 홍보한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간단한 설문'을 요청했다. 봉사활동 인식에 관한 항목이 주 내용인 듯했으나 곧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다.

내 전공 등을 확인하더니 나 같은 경우라면 글쓰기에 관한 봉사활동을 해줄 수도 있겠다며 연락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고 봉사가 하고 싶으면 내가 직접 연락을 하겠으니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남자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아서 "님이 말씀하신대로 봉사는 '자발적'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 뭔데 내 번호로 연락을 주겠다는 거냐"는 훈계(?)까지 하며 끝내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어쩌면 설문의 취지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개인정보를 알려달라는 건 좀 무례하고 또 위험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거리를 걷다가 공격받는 세상인데, 무려 이름에 개인 번호까지 알려 달라니. 전혀 '간단한' 설문이 아니다.

설문 조사로 인한 불쾌의 원인이 설문조사(자) 자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실명을 선뜻 공개해도 괜찮은 사회에 산다면 이런 요청이 덜 껄끄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은' 사회가 기본적 인적사항을 드러냄으로써 돌아올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다만 그런 사회가 아닌 이상 타인의 익명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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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