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는 혁명에 이어 일어난다. 5·16쿠데타는 4·19시민혁명에 이어 일어났다. 혁명은 과격한 것이기에 시민혁명에 의해서 세워지는 정부는 과격한 정부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온건한 정부가 들어섰다. 영국의 스튜왈트 왕조의 `절대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청교도혁명에 이어 세워진 `장노파 정부""와, 불란서의 브르봉 왕조의 `권의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에 의해서 세워진 `지롱드파 정부""는 모두 온건한 정부로 평가된다. 군주와 귀족을 숙청하지 않았다.
 4·19혁명에 의해서 세워진 장면정부는 온건파 정부로 평가된다. 역사상 온건파 정부시대를 `2중 주권시대""라고 부른다. 혁명주체세력과 정권담당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혁명주체들은 기존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과격하고 급진적인 정책을 전개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정권담당자들은 구시대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기에 급격한 변화를 자제하려고 한다. 장면 정부시대만 하더라도 `데모로 세운 나라 데모로 망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아침에 해가 떠서 해가진 밤늦게까지 전국이 데모로 소란스러웠다. `2중 주권시대""의 극치라고 하겠다. 국가의 질서가 문란해질 수밖에 없다. 질서의 파탄은 나라를 망치게 된다.
 질서를 되찾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 `쿠데타""인 것이다. 따라서 `쿠데타""에 의해 세워진 정부는 과격파인 것이다. 영국의 프라이드대령의 온건파 국회에 진입해서 세워진 `독립파 정부"", 불란서의 로베스피에로의 `쟈코방 정부""와 나폴레옹의 `총재정부"", 러시아의 레닌에 의해 세워진 `볼세비키 정부""는 모두 과격파 정부인 것이다. 쿠데타는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고 비민주적인 성격으로 평가된다. 시민혁명세력을 억압하는 한편 그들이 주창하던 구세력도 숙청한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위해 광신도처럼 열중한다. 많은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도 5·16세력들이 `조국 근대화 민족중흥의 역사를 창조했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바람직한 것은 민주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 주체들은 독재정치의 기반을 굳혔다. 하나같이 파쇼를 외치고 비밀경찰을 통해 정적을 숙청하고 적국을 빙자하여 장기집권을 획책한다. 박정희는 반공과 안보를 미끼로 18년 장기집권을 했다.
 다음단계로 독재자들의 말로가 모두가 비참했다는 것이다. 박대통령도 궁정동 한 모퉁이에서 `시바스리갈""을 마시며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듣다가 `그때 그사람""이 되고 말았다. 10·26후 서울의 봄은 어디로 가고 12·12사태에 이어 전두환 정부가 들어섰다. `오야 마음대로"" 하는 이승만, 박정희 정부로 복고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노태우, 김영삼 정부가 계승되었다. 권위주의 복고체제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치는 다음 단계로 명예혁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피흘리지 않고 권위주의 체제를 뒤엎고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것이다. 영국은 의원내각제로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했다. 혁명으로부터 227년만의 승리다. 불란서는 1575년 `2원집정제헌법""으로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우리의 경우 김대중 정부가 50년만에 정권의 수평적 교체를 이루었으니 명예혁명으로 세번째 민주정부를 탄생시킨 것이다. 제1민주정부는 `상해임시정부""였고 제2민주정부는 `장면정부""였다. 3·1시민혁명전쟁과 4·19시민혁명은 유혈적인 정변이었고 그 민주정부를 기습적이고 폭력적으로 전복한 것이 5·16쿠데타인 정변인 것이다. 명예혁명은 정변이 아니다. 정변과 달리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데 개혁적인 것이다. 정변은 과격하고 급진적이고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개혁은 점진적이고 온건하게 헌법과 일치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가며 절차를 중시하여야 한다.
 더욱이 권위주의시대의 관치경제를 시장경제의 원리로 전환시키는 가운데서 오는 혼란과 경제의 어려움을 국민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질서를 전환시키는 가운데 나타나는 혼란을 미리 예고하고 그 대책을 발표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길만이 개혁을 성공시키는 길이다.
 민주투사들에 의해 장악된 정부이지만 정변으로 수립된 정부가 아닌데 혁명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조급성을 버려야 한다. 5·16쿠데타 이후 40년간 누적된 권위주의 타성에 우리는 안주하는 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