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면가게들이 한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평동 냉면거리. 허름해 보이는 골목과 오래 된 간판이 오히려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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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 푹푹 찌는 무더위에 심신이 무기력해진다. 먼 거리 여행계획을 짜기도, 여행경비 마련도 부담스럽다. 시간 줄이고 돈도 아끼면서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주말을 만끽할 수 있는 나들이처 어디 없을까. 인천 동구 화평동 냉면거리가 한여름 입맛 잃은 미식가들의 침샘을 자극하고 있다. 반경 4㎞ 안엔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지천이어서 당일치기 추억쌓기에 더할 나위 없는 명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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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별미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의 맛

시원하고 칼칼한 열무가 들어간다는 게 다른 지역 냉면과 확연히 구별되는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만의 특징이다.

업소마다 제조비법은 약간씩 다르지만 24시간동안 푹 끓이고 우려낸 육수 역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라는 게 화평동 냉면거리 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회사원 김종민(42) 씨는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의 시원한 국물은 숙취 해소에 그만이어서 술자리를 가진 다음날이면 습관처럼 화평동 냉면거리를 즐겨 찾는다"고 말한다.

열무 맛에 쫄깃한 면발과 육수의 그윽한 향이 어우러져 관광객들 입길을 타게 됐다.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냉면과 마찬가지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은 건강식으로 손색 없다.

주원료로 쓰이는 메밀은 칼로리가 낮아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억척같이 자라는 특성이 있어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무공해 식품이기도 하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비타민 B군을 쌀의 3배나 함유하고 있다. 트립토판, 트레오닌, 라이신 등 필수 아미노산도 다른 곡류보다 많을 뿐더러 고혈압 예방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면에 들어가는 겨자와 식초는 피로 회복 효과를 높여준다고 한다. 더운 성질의 겨자가 냉면의 찬 성질을 중화시켜 주고, 식초는 강력한 살균력을 발휘해 피로감과 배탈을 해소하거나 예방하는 구실을 수행하는 것이다.

냉면에 고명처럼 얹혀져 나오는 삶은 계란은 식욕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여기엔 냉면에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할 요량으로 넣었다는 설과, 위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가장 먼저 먹는 용도로 얹는다는 설이 공존한다. 삶은 계란을 먼저 먹은 뒤 냉면을 먹는 게 좋다는 미식가들의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냉면은 사계절 내내 한국인의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지만 여름이야말로 제철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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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동 냉면거리의 역사

인천 냉면을 대표하는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은 값 싸고 양 많기로 유명하다.

대야 가득 채워져 상에 올려지는 냉면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경인국철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1~2분 거리 화평철교를 건너면 언덕길 양편에 냉면집이 모여 냉면촌을 이루고 있다. 바로 '화평동 냉면거리'다. 경인국철 철로를 사이에 두고 인천 동구와 중구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이 곳은 197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인근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냉면 사리를 더 달라는 주문이 많아 아예 처음부터 냉면을 푸짐하게 담아 손님상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냉면 그릇도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했다. 세숫대야 냉면으로 더 알려진 화평동 냉면은 이 때부터 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잡게 됐다. 공장 근로자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배려하고 가난한 젊은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줄 맞춤식단이 탄생한 것이다.

한창 번성기 땐 화평동 냉면거리에 스무 집 넘는 냉면가게가 성업했지만 지금은 13개 가게가 영업 중이다. 마치 1970~1980년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옛 건물과 허름한 간판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 풍경은 찾는 이들에게 친근감을 더해준다.

1997년부터 동구가 특색음식거리로 지정했다. 냉면 특화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이정옥 인천 동구의회 의장은 "없던 걸 새롭게 개발하고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현존하는 시설과 문화를 잘 살려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화평동 냉면거리가 인천을 대표하는 음식문화촌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참"이라고 말한다.

영업은 점심식사 시간 무렵인 오전 11시 시작해 밤 10시쯤 문을 닫는다. 세숫대야 냉면 가격은 그릇당 5천 원으로 동일하다. 업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하루 평균 300그릇 가량씩이 팔려나간다. 한 업소 관계자는 "물냉면보다는 비빔냉면의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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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얻는 골목 문화체험

서울 종로구에 북촌한옥마을과 소격동, 부산 사하구에 감천문화마을이 있다면 인천엔 근현대사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구가 있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래된 골목을 따라 한적한 여름날을 걷노라면 시 한 구절이 절로 흘러나온다. 숨가빴던 일상도, 고민거리도 잠시 내려놓고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인천의 뿌리이자 대표 원도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평동 냉면거리와 맞붙은 경인국철 동인천역이나 가까운 도원역에서 내리면 도보 20~30분 거리 안에 볼거리와 먹을거리 천국이 열린다. 세숫대야 냉면을 맛 본 뒤 여류롭게 길을 나서도 되고, 도보여행을 마친 뒤 화평동 냉면거리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워도 된다.

인천 동구가 추천하는 테마별 골목 문화 투어코스만 해도 5개 유형.

'우각로를 따라 걷는 근현대사길' 코스는 1.6㎞ 구간, 소요시간 약 26분이다. 배다리 전통공예상가를 출발해 배다리 헌책방골목,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창영초교 옛 교사, 영화초교 본관, 기독교사회복지관을 들러보는 코스다. '인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명물시장길' 코스는 2.7㎞ 구간, 소요시간은 약 41분이다. 송현동 순대골목거리, 중앙시장, 한복거리, 그릇상가, 송현시장, 현대시장을 거닐자면 어른들에겐 새록새록 추억이, 어린이들에겐 신기한 별세상이 펼쳐진다. '근로자·서민의 애환이 담긴 달동네길' 코스는 0.57㎞ 구간으로 소요시간도 약 7분에 불과하지만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송현근린공원, 송현배수지 제수변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물놀이터 '또랑'을 구경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 '호국애의 의지가 깃든 화도진과 냉면거리' 코스는 0.56㎞ 구간, 소요시간 약 9분인데 화도진공원, 화도진지, 화평동 냉면거리로 이어진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고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매립지에 조성한 공장지대와 부둣길' 코스도 둘러볼 만하다. 4.7㎞ 구간에 소요시간은 약 1시간 11분. 만석동 주꾸미거리에서 출발해 만석부두, 화수부두를 한 바퀴 돌며 어민들이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즉석에서 맛 보거나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관옥 기자 okyu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