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 재즈클럽 '버텀라인' 허정선 대표       
▲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

인천 토박이 부평 '음악소녀'
LP 카페 시절 단골손님 인연
친구 대신 맡으며 공연 열어

33살 된 국내 最古 재즈클럽
유명 연주자 즐겨찾는 명소
"늘 순탄치는 않아도 즐거워"


인천에서 음악 하는 멋쟁이들이라면 누구나 거쳐간 재즈클럽 '버텀라인'(Bottom line)이 문 연지 올해로 33주년을 맞았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 재즈클럽의 이름을 딴 이곳은 주말이면 재즈 연주가들의 공연과 음악 감상회가 열리고 평일에는 진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마니아들이 모인다.

손님으로 찾았던 버텀라인의 주인이 돼 23년째 운영을 맡고 있는 허정선 대표를 만나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며 아무런 욕심 없이 음악에 대한 애정 하나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음악이 마냥 좋았던 소녀

허정선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다.

인천에서 쭉 살아온 그는 어린 시절을 미군 부대가 있던 부평 2동에서 보냈으며 미국 유니버셜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20대가 되자 문화의 중심지인 신포동에 매일 드나들면서 LP 카페 곳곳을 누볐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버텀라인도 그 시절 매일 찾던 단골 가게 중 하나였다.

"1대 사장님을 거쳐서 제 고등학교 동창이 버텀라인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떠나야 했고 저한테 맡아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시작한 게 어느새 23년이 흘렀네요"

음악 없는 삶을 생각해볼 수 없었던 허 대표에게 사람들과 음악을 듣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버텀라인을 맡기 전에 내리교회 근처에서 '소리 창고'라는 LP 카페를 3년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월세, 전기세, 수도세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모를 나이에 막연히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공간을 마련했던 게 신기해요. 직접 페인트칠을 해서 벽을 꾸미고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 막무가내 정신이 지금까지도 있어서 해야겠다 싶으면 무조건하고 보는 경향이 있죠."

그 열정은 버텀라인을 23년간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허 대표는 97년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공연을 기획했고 그가 오기 전에는 음악을 틀어주는 LP 카페였던 버텀라인은 이제 유명 재즈 연주자들이 꼭 거쳐가는 재즈클럽이 됐다.

"인천에도 홍대처럼 음악을 듣고 공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공연을 하신 분이 우리나라 재즈 1세대인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 씨에요. 그분과 13인조 빅밴드가 공연을 펼쳤는데 사람이 꽉 들어찼을 정도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요. 버텀라인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이 공연을 시작으로 당시 재능대학교 재즈음악과 학생들과 인천에서 내노라하는 음악가들이 버텀라인에서 끊임없이 연주를 펼쳤다. 요즘은 유명 재즈 연주가들이 먼저 공연 요청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10월에 열리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프랑스 국민 베이시스트 앙리 텍시 호프(Henri Texier Hpoe)도 버텀라인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외에 유러피안 재즈를 선보이는 띠에리 마이야르 트리오(Thierry Maillard Trio)와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하루하루가 버텀라인의 역사

박성건 음악평론가가 집필한 <한국재즈 100년사>에서 버텀라인은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 중 하나로 소개된다. 1983년 처음 문을 열었고 건물의 역사는 100년이 넘어 가치 있는 근대 건축물로 꼽힌다.

"제가 버텀라인을 인수한 게 1993년도에요. 꾸준히 운영을 하고 있지만 순탄한 건 아니에요. 하루에 손님이 한 팀 넘게 오지 않는 날도 여전히 많고 이 건물을 언젠가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늘 있어요"

허 대표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사람들 때문이다. 신포동과 차이나타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들이 많이들 온다고 하지만 버텀라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랜 시간 버텀라인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과 공연을 요청하는 연주자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올해는 33주년이 됐고 내년이면 34주년이지만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버텀라인의 역사에요."

재즈는 겉으로 보기에 자유롭고 즉흥적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질서와 체계가 잡혀있는 음악이다.

그 틀을 벗어나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나올 수 없다. 자유와 질서가 공존하기에 좋은 음악으로 평가된다.

"제 삶도 재즈와 비슷한 것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늘 곁에 두고 살기 때문에 화려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나름의 기준과 규칙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죠."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인 음악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지 상상이 안 된다는 허 대표는 버탐라인이 신포동의 역사적 장소로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랄 뿐이다.

"얼마 전 미국 맨해튼에 갔었는데 극장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시카고나 오래된 뮤지컬들을 꼭 보고 가요. 버텀라인도 인천에 오면 음악을 듣기 위해 자연스레 찾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때는 다른 사람이 버텀라인을 맡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할머니가 돼도 음악을 즐기러 나올 거예요. 아르바이트생으로 써준다면 더 좋겠지만요."


/글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사진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