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어장 어디로 ... 그물에 걸린 눈물
▲ 1964년 화수부두 조기 건조장


1960년대 조기·민어 등 어족자원 크게 감소
호황 지나 묵묵히 섬 지키던 어민에 '불청객'
1990년대부터 中 어선 침범 '저인망식' 조업
꽃게 서식환경 파괴 … 정부 실효적조치 필요


물 반(半), 고기 반(半). 인천 앞바다는 그야말로 '황금 어장'이었다.

2016년 7월, 중국 어선에 점령당해 하루에도 수차례 해전(海戰)이 벌어지고 있는 곳. 갯가에 세워진 어선, 말라버린 그물은 어민들의 한숨을 대신한다.

우리나라 최대 어장 중 하나였던 인천 앞바다는 화려했던 조업의 무대에서 그 명성을 차츰 잃어가고 있지만, 수만의 그물이 닿았던 그곳은 명실공히 당시 어업문화의 중심지였다.

조업이 이뤄지지 않아 생계에 곤란을 겪는 어민들의 소식을 상상할 수 없었던 황금시대부터 남북 대치 상황을 틈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점차 빛을 잃어가는 서해의 오늘까지를 되돌아봤다.

중국 어선에 점령당한 인천 앞바다, 어민들이 뿔났다


어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지난 6월 5일 서해 5도 어민들이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했다. 오전 5시 23분, 서해 NLL 555m에 정박한 중국 어선 2척을 우리 어선 9척이 로프에 걸어 연평도로 끌고 온 것이다. 어선에는 중국 어민 11명이 승선해 있었다. 당시 중국 어민들은 취침 중으로 별다른 저항이 없었고 인명 피해도 없었다.

같은 달 24일 대청도 어민들도 바다에 뛰어들었다. 24일 오전 11시 대청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이 대청 어장에 설치해 둔 3톤에 달하는 폐 그물과 폐 통발을 직접 수거했다. 그물은 꽃게와 광어 등을 잡으려고 중국 어민들이 설치해놓고 방치해 놓은 것들이다.

이 그물들은 꽃게를 포함 농어, 광어 등 회류성 어류가 쉽게 오갈 수 없어 어족자원 고갈의 원인이 된다. 중국 선원들이 깔아 놓은 그물은 바닷속에 쌓여 10여 년간 방치돼 왔다. 특히나 이 그물은 물속에서도 썩지 않는 값싼 제품이다. 정부가 해양 쓰레기 수거를 해간다면서 수중에 있는 것만 걷어가는 정도에 그치자 급기야 주민들이 나섰다.

중국 어선에 밥줄을 약탈 당한 서해 5도 어민들이 정부가 나서서 중국 어선의 횡포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자, 지난 6월 10일 휴전 이후 처음으로 해상 민경이 투입됐다.

정부는 한강 하구 중립 수역에 민경 경찰을 투입, 중국 어선 퇴출 작전을 벌이는 등 중국 선원들의 무자비한 불법 조업을 강력하게 단속하겠단 방침이다.

우리나라 3대 '파시(波市)' 인천

▲ 1967년 연평 조기 파시


연일 총성 없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인천 앞바다는 수십 년 전만 해도 풍요의 요람이었다. 중국 어선을 퇴거하려는 경고 방송 대신 어부들의 환호성이 바다를 메웠다. 만선을 알리는 소리다.

"사흘 벌어 1년을 먹고산다."

인천은 우리나라 3대 파시(물결을 타고 바다에서 열리는 시장)로 명성이 높았다. 오뉴월이면 연평도는 고기떼의 집결지였다. 수십억 마리의 조기가 잡히고 바다 위에선 장이 열렸다. 서해 최대 조기 어장 연평도에선 봄이면 조기떼 우는소리에 섬마을 사람들이 잠을 깰 정도였다.

1944년 연평도에서 한해 잡힌 조기는 97억 마리였고, 1946년엔 그 양이 2만 2500톤에 달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그 많던 조기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1950~60년대에 이르면서 연평어장의 조기 어획량은 1만 톤 가까이 감소했고, 이어 대형 동력선들이 마구잡이 어획을 하면서부터 참조기의 개체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멸종 위험을 느낀 조기들이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것이다.

사정은 덕적도, 굴업도 등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최고의 어장 덕적도에는 새우 파시가 섰다. 새우잡이 어선들이 밤중에 조업을 나서면 덕적도가 환히 빛날 정도였다.

▲ 1971년 조개를 채취중인 어민들

당시 중국 톈진, 상하이 등지로 마른 새우를 수출하면서 1930~40년까지 새우잡이는 호황을 이뤘다.

덕분에 새우류를 잡아먹고 사는 민어도 덕적도로 몰려들었다. 당초 민어의 고장은 굴업도였지만 1923년 해일로 수많은 어민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덕적도 북리에 새로운 파시가 섰다. 북리 민어 파시는 193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주춤했던 민어잡이가 다시 시작되자 일본 무역선이 대량으로 잡아들이면서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 지나친 남획에 결국 덕적도 파시도 몰락했다.

선주와 선원들은 하나둘 떠났고 외딴섬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내 고요한 섬에 불청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해를 넘나든 침범

▲ 북방한계선에 정박중인 중국 어선들

중국 어선이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벌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양경찰대는 지난 1987년부터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전관수역을 침범해 조업을 하는 사례가 나타났고, 1990년 어선 70척이 영해를 침범, 289척이 어업자원 보호구역을 침범해 모두 359척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1992년 1월에는 우리 영해를 침범해 고기를 잡던 중국 어선 4척이 해경과 수산청 지도선에 최초로 나포되기도 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중국 어선은 서해상에서 그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1990년 중국 어선 전체 침범 건수 359건 중 서해 특정 해역은 총 46건으로 전체 12.8%에 그쳤지만 92년 13.9%, 93년 51.5%, 94년 75%, 95년(상반기 기준) 77.5%로 급증했다. 1995년부터 중국 어선들은 본격적으로 서해 NLL 인근에 드나들었다. 이듬해인 1996년, '황금 어장'이었던 인천 연평도는 꽃게잡이 피해가 속출했고 꽃게어장이 열리는 2월에서 6월까지 연평도는 중국 어선에 점령 당했다.

올해만 벌써 29척.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 해경에 나포된 수치다. 퇴거 조치해 돌려보낸 건만 해도 2360건이 넘는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해 NLL 해역에서 불법 조업한 중국 어선을 단속한 건수는 17건, 배타적 경제수역(EEZ) 해역 191건으로 총 208건이다.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 어선 단속 건수는 무려 4236건에 달한다. 해경은 중국 연안의 어자원이 감소함에 따라 무허가 어선의 불법 조업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상의 무법자, 중국 어선의 만행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행위는 우리 해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만행은 그야말로 세계적 민폐를 끼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일본,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대만 등은 EEZ 해역에 무단 침입한 중국 어선에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지난 3월 아르헨티나 남부 푸에르토 마드리 인근 EEZ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민들은 아르헨티나 경비정의 추격을 받다 경비정을 들이받는 등 공격을 시도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해경은 즉시 사격, 중국 어민 32명을 전원 체포하고 어선을 침몰시켰다. 러시아도 지난 2012년 8월 중국 산둥성 선적 어선 4척이 러시아 경비함의 정선 명령에도 불응한 채 도주를 펴자 함포사격으로 대응했다. 베트남은 단속 선박에 기관총을 탑재했고,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인근에 전투기를 배치해 단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경이 영해를 침범해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고는 있지만 중국 어선의 무력 저항에 쉽지 않은 실정이다. 중국 어선들이 NLL 수역에서 자행하는 불법 조업은 사실상 통제가 어렵다.

최근 해경 단속 요원이 NLL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을 나포하려다 납북될 뻔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 발생한 연평해전도 이 인근에서 발생했다. 남북의 충돌 위험이 높은 NLL에 해경 경비정은 접근할 수 없을뿐더러 단속도 남북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 어선들은 이런 남북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인천 앞바다에선 추격전은 예사고 충돌 사고도 잦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대청도 인근에서 중국 선원이 해경을 폭행하고 도주하는 일이 일어났다. 2008년에는 중국 어선 단속을 벌이던 박경조 경위가 순직했다.

또 2011년 12월 인천 해양경찰서 소속 이청호 경장이 중국 선원에게 살해당했다. 인천 옹진군 소청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 루원위 15001호 나포작전을 펼치던 이 경장은 조타실로 투입돼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인 선장 청다웨이가 휘두른 흉기에 중상을 입고 후송 중에 사망했다.

지난 6월 30일 기준 2001년 한중 어업협정 발효 16년째를 맞았다. 한중 어업협정대로라면 무허가 중국 어선은 어업협정 7조 서해 잠정조치수역(한중 공동어로수역), 어업협정 9조 현행 조업질서 유지수역에 해당하는 인천 앞바다에서 사실상 조업이 금지돼 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중 어업협정은 지켜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지난 2014년 한중 어업공동위원회 협상 결과 잠정조치 수역 내에서 양국 지도선 감시를 강화해 중국 어선의 불법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기로 합의했으나 이마저도 효력이 없는 상태다.

갈치나 조기 등의 주 어장인 잠정조치수역은 중국 어선이 싹쓸이 조업을 펼치는 무대다. 게다가 잠정조치수역을 넘어 우리 해역까지 제집 드나들듯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서해 어업질서는 붕괴됐고 공동 조업이 가능한 잠정조치 수역은 중국 어선들 차지가 돼 우리 어선은 출어를 포기한지 오래다.

어민들의 한숨, 말라버린 그물

해마다 서해 5도 어민들의 피해 규모는 커지고 있다. 수산정책연구소는 중국 어선 불법조업으로 인한 직·간접 손실금액이 연간 약 1조 2000억 원~2조 5000억 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어선의 무허가 조업은 우리 어민들의 조업 금지 기간이자 꽃게 알이 차는 4월이면 서해상에서 활개를 친다. 이 때문에 꽃게장사로 한 해를 먹고사는 어민들은 중국 어선 불법조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인천 앞바다의 꽃게 어획량은 70% 가까이 감소했다. 지난 3년간 꽃게 어획량을 보면 2013년 9984톤, 2014년 9499톤, 2015년 6721톤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중국 어선들이 우리 어민들은 사용이 금지된 저인망(底引網) 그물로 바다의 아래까지 훑어 한 번에 대량으로 포획해간 영향이다. 이들의 조업 방식은 저인망의 양 끝을 배 두척에 각각 연결해 무거운 납을 달고 바다 전체를 훑는 식이다. 이는 어종 크기에 상관없이 모조리 잡을 뿐 아니라 바다 아래 뻘을 일으켜 꽃게 서식 환경까지 파괴시킨다.

인천시는 이 때문에 꽃게 산란이 어려워져 해마다 꽃게 어획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는 인천 앞바다 제2의 파시를 기대하며 지난 2009년 연평도 항 확장공사 시행, 지난 2013년부터 연평을 비롯한 인천 앞바다에 참조기 치어를 방류하는 등 '황금 어장' 살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결과는 미미하다. 조기가 떼 지어 물길을 가르고 꽃게가 그물마다 쓸려 올라오던 시절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됐다.

눈물의 서해, 제2의 부흥을

서해는 풍요를 잃었고 중국 어선의 만행은 통제 수준을 넘었다. 우리 어민들의 재산상 손실은 물론 심지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전개될 지경이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군과 해경, 유엔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요원들로 구성된 민정 경찰을 중국 어선 단속에 투입했다.

정부는 또 중국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중국 측이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즉각 취해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번 달 예정된 어업문제 협력 회의에서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시는 중국 어선 피해 현황 분석 등을 위해 연평도를 찾고 정부에 대책 마련 요구와 시의 행·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시는 남북 간 대립 상황을 이용한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견제하기 위해 남과 북 중간 수역에서 북한 어민이 잡은 수산물을 우리 어민이 사들이는 남북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남북 공동 시장 개설 등의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또 서해 5도 관할 해경안전서 신설과 함께 서해5도 지원 특별법을 개정해 관계 부처와 인천시가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기구를 수립할 계획이다.


/김혜민 기자 khm@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