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산다면 그렇게 말못해"
▲ 평택 미군기지 이전으로 마을을 통째로 옮긴 팽성읍 대추리 평화마을(법정명·노와리) 에서 한 어르신이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대추리 이장 "대권의식 발언"
"단한번 듣는 시늉도 않더니"
대책위 "우릴 개·돼지로 보나"


12일 오후 3시쯤 평택역사 앞. '더 이상 평택의 희생을 강요마라! 사드배치 반대한다', '사드 전자파로 평택시민 다 죽는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평택이나 오산에 사드배치 찬성한다"고 말한 뒤 평택시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었다.

이날 평택역 앞에서 여론조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이정우(20)씨는 평택시민단체들이 설치한 현수막을 보면서 휴대폰으로 관련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기자가 남지사 발언에 대해 묻자 그는 "남 지사는 시민을 생각하지 않는 도지사"라며 "시민이 허락을 한다면 설치할 수 있겠지만, 시민들은 허락지 않았다. 평택시민이 도지사 집 앞에 설치하라고 하면 지금의 우리 마음을 이해하겠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남 지사 발언 후 아침부터 평택시민단체가 요청한 100여개의 현수막을 시내에 거는 작업을 한 업체 관계자는 "도지사와 같은 여당 단체장은 평택과 안성밖에 없는데, 평택은 미군기지가 있으니 쉽게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평택시민으로써 불쾌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미군기지 확장이전으로 수년간을 싸우다 40년 살던 마을에서 쫓겨난 대추리 이장 신종원(54)씨는 "만약 남 지사가 평택에서 살아야할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겠냐"며 연신 한숨을 지었다.

신씨와 마을에서 쫓겨난 60~80대 대추리 주민들 300여명은 갈 곳이 없어지자 인근 노와리에 '대추리 평화마을'을 만들어 함께 살고 있다. 이날 이 곳 '황새울 기념관'에 동네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노인들은 10년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치를 떨었다.

이들은 "오늘 지사의 발언은 '통큰 정치, 충분한 대책을 찾자' 등 좋은 말은 늘어 놨지만 실제로 평택시민들과 토론회는 커녕 한마디 의사도 묻지않았다. 대권을 의식해 무책임하게 던진 정치적인 발언이라고 본다"며 10여년전 마을에서 쫓겨날 때 설움이 북받쳤는지 화를 냈다.

사회발전소, 평택농민회 등 30개 단체으로 구성된 '사드배치 반대 평택대책위원회(준)'는 이날 오전 대책회의를 열고, 현수막 시안 제작, 성명서 발표 등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이은우 위원장은 "남지사는 평택시민을 개, 돼지로 보는가. 평택시민의 불안에 떨고 있는데 단 한번의 위로조차 없었고 오히려 도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며 "국가권력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평화를 파괴하는 현실 속에서 몇 년을 처절하게 싸운 평택시민들의 아픔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택시민도 도민이다. 도민의 투표로 뽑은 도지사가 평택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고 거론한 것은 지사로써 '빵점'이다"며 "지사는 발언하기 앞서 어떤 파장이 생길지 도민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들어 경북 성주 성산리가 사드 배치 결정 지역으로 정부에서 거론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도지사에 대한 평택시민들의 실망과 격앙된 분위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임대명·이경 기자 leek@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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