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상영 후 '호평' … 스크린 평점은 '인색'
최고점 '토니 에르트만' 최강력 후보 부상
21편 경쟁작 모두 가능성 … 뚜껑 열어봐야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칸에서 호평을 얻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아가씨' 제작진들이 칸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찬일 영화평론가

아무래도 '아가씨'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해야 할 성싶다. "박찬욱의 '아가씨', 칸영화제서 황금종려상 받을 수 있을까". 국내 한 매체의 칸 관련 제목이다. 당연히 국내 매체들은 말할 것 없고, '아가씨'의 직·간접적인 관계자들, 영화계 종사자들, 나아가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 등 한결같이 위 질문을 22일(현지 시각) 폐막 때까지 계속 던질 것이 뻔하다.

14일 영화가 선보였을 때만 해도 그 기대를 품기 충분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할리우드 리포터 칸 데일리들의 호평만이 아니라 적잖은 해외 영화(제) 관련자들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지 않았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반전을 거듭하는 최상급 장르적 쾌감이다. 인물 감정선의 단절은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해 낯설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로 풀이 된다"는, 어느 매체에 보낸 단평이 내 평가를 축약한다. 크고 작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는 빅토리아 왕조 시대인 1860년대 런던을 무대로 펼쳐지는 좀도둑들과 범죄자들의 스릴러와 사랑 이야기를,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치하의 한국으로 옮겼다.

아주 자유롭고 느슨하게! 무엇보다 아가씨와 하녀 사이의 동성애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백작과 이모부 두 '젠틀맨'에게도 그 못잖은 방점을 찍는다. 이 사실은 흔히 독해되는 것과는 달리 영화가 계급과 신분이 상이한 두 여인 간의 동성애 스토리로만 읽혀서는 안 되며, 나아가 일제 식민 시대를 살았던 네 중심인물들의 복합적 내·외적 드라마로 읽히길 원한다는 감독/영화의 욕망을 함축한다.

스크린 14일 자 인터뷰에서 감독도 말했듯, 영화는 소설'에 근거하여'(based on)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영감을 받은'(inspired) 셈이다. '박쥐'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에 영감 받았듯이.

인물 구도나 연기·사운드 연출 등도 인상적이나, 영화의 공간 구도인 미장센이나 장르 세공력 등이 가히 압도적이다. 장르 영화의 귀재인 심사위원장 조지 밀러 등 심사위원단이 그 덕목들에 주목한다면 수상 확률은 높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15일, 스크린의 종합 평균 평점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급랭'됐다. 예년보다 2명 는 총 12명의 전문 평자들 중 10명이 평점을 부여한바, 4점 만점에 2.2점을 받는데 그쳤다. 2009년 각본상을 안은 '박쥐'보다 0.2점이 낮은, 평균을 웃도는 저조한 점수다. 대체적으로 스크린에 비해 인색하긴 하나, 15인 프랑스 평자들로만 구성된 르 필름 프랑세의 평균 평점은 한층 더 저조해 1.7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황금종려상은커녕 수상권 안에 들기도 힘든 게 아닐까?

천만의 말씀. 칸 현지 전문가들의 평가와 아랑곳없이, 경쟁 부문 심사위원들의 최종 결정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4년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터키 누리 빌게 제일란의 '윈터 슬립'이 황금종려상을 안았지만, 2015년엔 별다른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프랑스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의 몫이었다. '디판'의 스크린 평균 평점은 2.5점이었다. 2010년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는 2.4점이었는데,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그해 영국 마이크 리 감독의 '어나더 이어'는 최고 평점 3.4점을 받고도 무관에 그쳤다….

또 다른 칸 데일리 갈라 크롸제트의 세계 여러 나라 11인 평론가들의 평점에 눈길을 주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스크린에서는 2.4점으로, 17일 새벽 현재 평점이 발표된 8편 가운데 3.8점을 득한 독일 마렌 아데 감독의 '토니 에르트만'에 이어, '아메리칸 하니'와 더불어 2등에 위치해 있는 영국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3.1점에 뒤이어 2.7점으로 '아가씨'가 2위에 마크돼 있는 게 아닌가. '토니 에르트만'은 프랑스 니콜 가르시아 감독의 '프롬 더 랜드 오브 더 문'과 함께 2.5점으로 3위권이다.

이렇듯 평가는 상대적일 대로 상대적인바, 특정 어느 영화만이 아니라 21편의 경쟁작 모두가, 수상권은 말할 것 없고 칸 최고 영예를 차지할 가능성을 띠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곳 현지 분위기 상 '토니 에르트만'이 최 강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부상해 있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 없다. 무엇보다 스크린이 가장 널리 참고 되는 칸 데일리인데다, 영화가 스크린 종합 평점 사상 역대 최고점을 얻어서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4년 남자 연기상(티모시 스폴)을 수상한 마이클 리 감독의 '미스터 터너'의 3.6점이었다.

'토니 에르트만'은 장난기 가득한 아날로그 세대 아버지 빈프리트/토니(페터 시모니쉐크 분)가 천상 워커홀릭인 디지털 세대 딸 이네스(잔드라 휠러)를 일중독에서 구출해내기 위해 딸의 일터 등에 깜짝 방문하며 펼치는 일련의 해프닝을 극화한 코믹 휴먼 드라마다.

영화에는 칸이 그 동안 중시해온 미덕들이 즐비하다. 우선 시대적 의미·메시지가 있다. 이네스는 일에 빠져 삶의 어떤 여유·이유를 놓치고 살아가는 대다수 우리네 현대인의 자화상 아니던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극적 호흡으로 2시간40분여 동안 유려하게 펼쳐진다.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하는 웃음과, 눈가를 적시게 하는 찡한 감동을 실어, 때론 허를 찌르는 파격적 시각을 곁들여, 이만하면 황금종려상 감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갈라 크롸제트의 평가처럼, 감독 특유의 걸작 사회성 휴먼 드라마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박찬욱 영화세계의 어떤 터닝포인트일 '아가씨'를 한층 더 지지하지만 말이다.

만약 '토니 에르트만'이 최종 승자가 된다면, 여자 감독으로는 '피아노'(1993)의 제인 캠피언에 이어 칸 역사상 두 번째이며, 독일영화로는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1984) 이후 32년만의 쾌거가 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들이 적잖다. 생애 첫 칸 정상에 도전하는 스페인 영화의 보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훌리에타'를 비롯해,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으로 이미 두 차례나 칸 정상을 밟았던 장 피에르&뤽 다르넨 형제 감독의 '언노운 걸',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최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주인공,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졸업', 그리고 베를린 황금곰상과 오스카 외국어상 등을 대거 휩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의 명장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세일즈맨' 등 버거운 상대가 한둘이 아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며 2016 칸의 열기가 한결 더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계속)


/칸=전찬일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