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이 현대전의 가공할 만한 무기가 된 것은 2차대전 중이다. 이때 독일의 V-2가 등장했다. 패색이 짙었던 독일이 오랜 기간 은밀히 개발해온 V-2를 실전에 배치한 것이다. 점령지 유럽대륙의 서안에서 런던을 향해서였다. 그러나 패망 직전의 1944년 9월이었던 만큼 실효를 발휘할 수 없었다. 종전이 되자 이번엔 미소 양국이 기술진의 접수를 서둘렀는데 미국이 한발 빨랐다. 폰 브라운을 비롯 로켓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로켓 개발의 핵이 되었다. 하지만 로켓에 의한 우주개발에는 소련이 기선을 잡았었다.

 구미 강대국의 전유물 같았던 로켓은 실은 옛 중국에서 발명된 것이었다. 화약을 추진제로 해서 축제나 의식용으로 사용되던 화살을 쏘아 올린데서 착안된 것은 1042년이었다. 이 무기는 200여년 뒤인 1232년 몽골군의 개봉성 공략전에 등장 침략군을 전율케 했었다. 이것이 곧바로 유럽에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로켓의 평화적-즉 훗날 우주비행과 인공위성의 이용에 기여한 주인공이 있었다. 러시아의 한 무명교사 지올로프스키였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의 1896년 로켓을 행성으로 날아가기 위한 여행 수단에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러면서 이를 구체화한 것이 1903년의 액체 연료를 사용한 다단계의 로켓으로 가능하다는 수학적 원리의 발표였다. 그에 힘입어 1920년대에는 각 나라마다 로켓 연구를 위한 아마추어 협회가 등장했었다.

 우리나라 로켓 연구의 효시는 인하대학교라 할 만하다. 이미 70년대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로켓이 송도해안에서 발사에 성공, 크게 보도되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후로 한때 중단된 일이 있으나 해마다 로켓의 시험발사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 지금도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지올로프스키도 폰 브라운도 육성되고 있다.

 “우리는 인류를 위해 평화롭게 이곳에 왔다”-1969년 달에 첫 착륙을 한 암스트롱의 제일성이다. 여기에 인하 로켓 동아리들의 뜻이 요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18일부터 그들의 로켓학술제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