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멧따꿍(트랙털이)들은 달라붙지 않았다. 밧줄도 장력이 좋았고, 입쌀을 담은 마대자루도 잘 묶여 있었다. 그는 적재함의 우측 후미를 돌아, 개성직할시 장풍군 쪽을 내려다보며 바지의 앞섶을 헤쳤다.

 위치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산아래 아득한 곳에서 불빛이 비쳐왔다. 남반부 국방군 아새끼들의 고성기(확성기) 방송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방송이 들려오면 전연지대에 복무하는 인민군 하전사들이 남반부 고성기 방송 내용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공화국 쪽에서도 방해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군사분계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풍군 일대는 전쟁터처럼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북남간의 고성기 방송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남반부 고성기 방송이 『만고역적 김일성과 그 졸개들이 벌이는 극악무도한 살인극은 오늘도 북녘 천지를 피로 물들이고…』하면서 악을 써대면, 그 보복이라도 하듯 공화국 고성기도 『미제의 보호 아래 광주 량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전두환 역도는…』하면서 남반부 고성기보다 더 소리 높여 외쳐댔다. 민경부대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만 해도 금방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두렵기만 했었는데, 3년 넘게 전연지대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그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날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 그 에미나이가 나올 시간이구나….

 인구는 길가 풀 섶을 향해 철철 오줌을 내갈기며 머리 속으로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군중문화오락회가 끝나고, 취침시간이 다가올 때쯤 되면 남반부 국방군 아새끼들의 고성기 방송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화국의 군중문화오락회에 맞춰 노래와 재미있는 이야기 방송을 나직나직하게 내보내다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비방하는 방송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거기에 뒤질세라 남반부 고성기 방송은 더 독기를 품어댔다. 그러다 공화국의 하전사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소식들이 끝나면 이내 잠복조의 야간 근무자들이 교대할 시간이 되었다. 그때는 예의 그 남반부 에미나이가 나와 「꿈을 잊은 그대에게」 하면서 부화끼가 자르르 흐르는 농탕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속살거려댔다.

 여러 사람이 힘차게 외쳐대는 듯한 전투적인 혁명가요를 주로 듣다가 남반부 그 에미나이가 속살거리는 이야기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남반부 인민들은 하도 굶고 전두환 역도에게 시달려서 노래 소리도 힘이 없구먼 하고 흉을 보곤 했었는데, 몇 달씩 계속 듣다가 보니까 낮게 속살거리는 이야기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뜻은 모르고 있었지만 미제의 팝송도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흔드는 듯한 마력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남반부 에미나이의 목소리와 노래들이 기다려질 때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