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필의 세상사] 중국 흑룡강성을 보다
[박정필의 세상사] 중국 흑룡강성을 보다
  • 김진국
  • 승인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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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수필가

여행을 앞두고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슴이 고무풍선처럼 부풀었다. 여행길은 기쁨과 낭만을 만끽하지만, 반면 지루하고 무료감도 따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게 되고, 지식정보도 얻으며, 삶에서 생긴 스트레스도 해소해주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근래 들어 소음문제로 이웃과의 살인사건이 종종 터진 것을 보면 끔찍하다. 하지만 나는 이웃을 잘 둔 덕에 뜻하지 않게 해외여행의 기회를 잡았다. 박순태(62) 씨와 만난 지 4년이 흘렸는데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가 속내까지 다 털어놓게 된 이웃 겸 친구가 됐다. 실로 어정쩡한 죽마고우보다도 훨씬 정감이 넘친다.

이젠 둘 사이에는 감정과 생각도 자연스럽게 소통되어 신뢰가 두터워졌다. 그는 이른바 조선족으로서 한국에 온 지 16년이 지나 온전히 토종 한국인이 됐다. 게다가 성격이 활발하여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거짓말을 모른다. 그래서 더욱 호감이 간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그가 살았던 고향인 '내몽고 찰란둔시 청지스한鎭(한국의面) 조선족 마을 홍광촌'을 죽기 전 한번 가야겠다는 말을 듣고, 나와 함께 갈 수 있느냐고 제의했더니, 흔쾌히 승낙해줘 이미 동행을 약속했다. 사실상 여행은 혼자보다 둘이 가는 게 말동무 되어주니 심심치 않다.

지난 7월 1일 여행일정을 흑룡강성을 거쳐 내몽고로 잡고 간편한 짐을 꾸러 가지고, 할얼빈 공항까지 가는 여객기에 탑승했다. 잠시 비행 동체는 활주로를 힘차게 달리다가 사뿐히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서쪽으로 한참 날아가다가 기수를 북쪽으로 틀었다. 2시간쯤 지났을까. 기내방송은 목적지에 곧 착륙한다고 알렸다. 만약 남북통일이 됐다면 1시간 정도 걸릴 거리다.

흑룡강성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만주지역은 5세기에 고구려, 7세기에 발해, 12세기에는 금이 건국되어 뒤에 국호를 후금, 청으로 변경하였고, 시대에 따라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이라고 불렸으며, 아직도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일본 관동군이 만주국을 세우기도 했다. 나의 지식정보는 고작 이 정도다. 더 궁금한 것은 박 씨께 물으니 "한국보다 면적은 2배 정도 크고, 인구 4천만 명, 성 소재지는 할빈시다"라고 한다.

오후 3시 치치할행 버스에 타고, 반시간 달려오자 저 멀리 송화강을 낀 할빈시의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거기에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할빈 역에서 일제 초대 조선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한 현장과 기념관을 둘러보지 못한 미련이 남는다.

박씨 왈, "중국선 한국인이 거사를 한 점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단다." 한편 차창 너머로 광활한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도로 양편엔 아름드리 백양나무가 수없이 빽빽하게 서있다.

아마도 기후와 토질에 맞는 수종인가 보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을 볼 수 없고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 공장 굴뚝도 보이지 않는다. 띄엄띄엄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들이 영상처럼 스쳐갔다. 게다가 밭에는 옥수수가 어른 키만큼 자랐고, 수전에는 벼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으며, 너른 벌판에는 자연 그대로 생겨난 호수 하천 강 지천 등 많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인위적으로 보를 만들고, 물줄기를 억지로 틀고, 국고를 낭비한 흔적은 볼 수 없었다. 연 강우량이 70%가 농작물 성장기에 집중적으로 내려 모든 작물들의 기후조건에도 안성맞춤이란다. 2시간 정도 흘렸을까. '대경시'라고 쓴 이정표가 다가왔다. 드넓은 들판에는 석유를 뽑아내는 시추기가 쉼 없이 움직인다.

이곳서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 절반을 차지한다. 참으로 부럽고, 살고 싶은 풍요가 넘친 땅이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법의 도입으로 재배된 농작물을 중국인 대다수가 선호하여 농가소득을 높이고 있단다.

지구촌서 이처럼 신이 내린 기름진 옥토를 가지고 있다는 게 중국의 자랑거리다. 게다가 '세계적 식량보고'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특히 안타깝게도 조선족의 농촌 인구가 줄고, 그 만큼 한족들의 농촌유입 현상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더 나은 삶과 새로운 문화를 만나기 위해 한국 또는 중국 내 북경 상해 청도 위해 등지로 떠났다고 귀띔해 준다. 박 씨와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벌써 치치할시에 도착했다. 어느덧 해는 지평선으로 넘어가고 있다.

4시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좀 더 심도 있는 고찰과 폭넓은 식견으로 묘사했다면, 흑룡강성에 관한 충분한 이해와 여행하고 싶은 감성을 자극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내 지식과 능력의 한계 탓에 '수박 겉할기식'에 불과해 자괴심이 든다. 그렇지만 입체적인 정보를 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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