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통보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는 상대방이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인천지법 민사17부(도진기 부장판사)는 A(26)씨의 유가족이 그의 여자친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1년 남미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났고, 둘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A씨는 여자친구가 있는 지방을 오가며 3년간 사귀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여자친구는 A씨에게 이별 통보를 했다.

이에 A씨는 곧장 여자친구가 사는 오피스텔로 내려갔고, 둘은 3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지만 여자친구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그 건물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뒤 A씨의 여자친구는 연인이 자살한 지 7개월만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자 A씨의 부모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상대로 총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아들과 여자친구가 3년 넘게 사귀며 결혼을 준비했고 1주일 이상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내는 등 사실혼 관계였다"며 "피고는 아들이 자살할 무렵 이미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사실혼 관계가 성립하려면 객관적으로 사회통념상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실체가 있어야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그러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또 재판부는 "법률은 '어떤 행동을 하면 보통 이런 결과가 발생한다'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원인행위만을 다룬다"며 "이별통보 뒤 자살이라는 이례적인 선택을 두고 상대에게 법적 책임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설혹 미혼남녀가 서로 사귀다 변심해 다른 이성을 만나 이렇게 됐다 해도 법이 끼어들 문제는 못 된다"고 판단했다.


/김지혜 기자 wisdomjj0227@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