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AG '체육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 씨앗 뿌려
전용경기장 마련 … 대표팀 훈련·지역내 보급 활력
동아시아 국제대회 창설 등 국민적 관심갖기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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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크리켓 대표팀.
'야구의 조상'으로 불리우는 크리켓은 지난해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남긴 유산 중 하나다.

우리에게 여전히 친숙한 종목은 아니지만 크리켓은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난 후에 구도(球都) 인천에서 서서히 뿌리내리며 국민들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이에 본보는 창간 27주년을 맞아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크리켓이 인천을 중심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에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 조명해봤다.



야구에는 조상이 있다. 바로 크리켓이다. 공을 던져 방망이로 친 뒤 달리는 크리켓이 베이스가 있는 다이아몬드형 내야, 안타, 파울 등 근대 야구와 유사한 '라운더스'가 됐고, 이것이 발달해 지금의 야구가 됐다는 것이 야구 기원에 관한 유력한 설이다. 아직은 여전히 생소한 크리켓이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해 열린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서다.

지난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때 대한민국은 총 44개 대회 종목 중 43개 종목에 모두 대표 선수를 뽑아 보냈지만 유일하게 한 종목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 종목이 바로 크리켓이다.

대표 선수를 구성할 수 없을만큼 저변이 취약했던 탓에 결국 출전을 포기한 것이다.

당시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2014년 다음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인천은 광저우 대회 종료 직후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안방에서 대회를 치러야하는 인천은 "이번에도 크리켓 종목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고, 인천시 아시안게임 지원본부 비전사업팀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우선 예산이 필요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매우 생소한 크리켓은 외면당했고, 재원 마련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다.

인천시가 아시아경기대회 유치를 위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약속했던 '비전2014프로그램'을 떠올린 것이다.

일명 '체육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으로 인천시가 8년 동안 2000만불의 예산을 OCA에 주면 OCA는 이를 체육 약소국 지원 사업에 사용하는데 이 중 일부(최대 40%)를 인천시에서 집행한다. 코치를 파견하거나, 장비를 보내주거나, 국내로 초청해 전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데, 매년 초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확정하려고 인천시와 OCA가 만난다.

지난 2011년 1월 동계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던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OCA운영위원회의가 열렸고, 이곳으로 날아간 김남기 당시 인천시 아시안게임 지원본부 정책조정관(현 인천크리켓협회 전무이사)과 비전사업팀 관계자들은 "크리켓 종목에 있어서는 한국도 체육 약소국이니 한국에도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그 결과 OCA로부터 "매년 5만달러씩 지원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야말로 역발상으로 얻은 쾌거였다.

예산이 확보되자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천시는 크리켓 전문가를 찾던 중 파키스탄에서 귀화한 나시르칸(현 인천크리켓협회 경기이사·인천일보 6월17일자 13면)씨를 만나게 됐고, 그를 아시안게임지원본부 비전사업팀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해 영어업무 지원과 크리켓에 대한 자문을 받으면서 지난 2011년 10월 인천크리켓협회 창립과 11월 대한크리켓협회의 대한체육회 인정단체 승인을 주도하게 된다.

이후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크리켓 여자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나시르칸은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있다.

앞서 아시아경기대회에 최초로 참가한 대한민국 크리켓 남자대표팀은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고, 여자대표팀은 크리켓 강대국을 상대로 당당한 경기를 펼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사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우리나라에서 크리켓이 계속될 지는 미지수였다.

얇은 선수층에 국제수준과는 크게 차이가나는 실력,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가장 낯선 종목이라는 객관적 조건은 대한민국 크리켓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다.

게다가 아시아경기대회때문에 지어진 우리라나 최초의 크리켓 전용경기장의 존속 여부도 불투명했다.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종목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끊임없는 요구가 여기저기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 서구 연희 크리켓전용경기장.

하지만 크리켓은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 잘 살아남아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천크리켓협회의 노력으로 대한크리켓협회와 인천시는 협약을 맺어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 전까지 연희크리켓경기장을 크리켓 국가대표 훈련시설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 곳에서는 지난 3월부터 크리켓 남녀국가대표팀이 상주하며 2018년 인도네시아 아시아경기대회 입상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다.

후원도 이어졌다. 올 초 사회적 기업 '피플앤컴'은 이 곳에서 숙소 생활을 하는 크리켓 대표선수들을 위해 개인용 컴퓨터 10대를 기증했다.

또 인천크리켓협회가 이 곳 서구 연희크리켓경기장을 국가대표 훈련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경기장 사후 활용의 모범 사례로 알려지면서 외신의 조명도 받았다.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는 지난 3월 연희크리켓경기장을 방문, 크리켓 남녀 국가대표팀의 훈련 모습과 경기장 활용에 관한 취재를 나왔다.

이들은 여자크리켓 국가대표팀 감독과 인천크리켓협회 관계자를 통해 대표팀 훈련 및 경기장 운영 상황을 파악한 뒤 돌아갔다.

인천크리켓협회는 경기장 활용을 극대화하고자 이 곳에서 국가대표 훈련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훈련이 없는 주말에 코리아컵 아마추어 크리켓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존재하는 14개 성인 크리켓 팀 중 12개 팀이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아울러 아시아경기대회 전부터 어린이 영어크리켓교실을 운영하는 등 크리켓 보급사업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현재 전국 10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보급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내년에는 인천 지역내 초등학교 10개교에 크리켓팀을 만들어 주니어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기도 하다.

인천 소재 학교는 서구의 연희크리켓경기장에 직접 와서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교육청과 협조해 크리켓 경기장을 다문화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는 방안 역시 추진 중이다.

크리켓을 좋아는 나라들(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등)의 문화도 체험하고 크리켓도 직접 배워보는 다문화 생활체육의 산실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인천크리켓협회 관계자는 최근 이청연 교육감을 만나 사업기획안을 전달했다.

이밖에도 선수들에게 국제경기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크리켓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인천아시아경기대회 1주년이되는 9월19일을 전후해 일본과 홍콩, 중국 등이 참가하는 크리켓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대한크리켓협회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동아시아권 국가가 참가하는 국제대회 창설을 논의할 예정이다.

동아시아 대회가 만들어지면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마카오 등이 참가 가능할 것으로 협회는 보고있다.

아울러 대표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자 지난 2월 네팔과 선수 교환 프로그램 협약을 맺었고 드디어 7월 네팔의 에이스를 국내로 초청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인천은 대한민국 크리켓의 산파에서 메카로 우뚝서고 있다.

대한크리켓협회 사무국이 인천 훈련장으로 옮겨 실질적인 업무를 보고있고, 사무국장 역시 인천크리켓 협회 출신이 맡는 등 대한민국 크리켓에서 인천이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아시아경기대회 당시 선수 중 맏어니었던 전순명(47)은 지금 여자대표팀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김남기 인천크리켓협회 전무이사는 "대한민국 크리켓이 인천에서 성장하고 뿌리내려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며 "여전히 낯선 종목이지만 열심히 노력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하며 국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 ·사진제공=인천크리켓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