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 그리스 사태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글로벌 i] 그리스 사태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 김진국
  • 승인 2015.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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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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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긴축과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endless austerity, and a depression with no hint of an end).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 교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디폴트로 치닫고 있는 그리스 사태의 원인이 유로화(貨)가 그리스를 경제적으로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옭아맨 탓이라며, 이제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끝낼 때(it's time to put an end to this unthinkability)라고 말한다.

EU집행위원회(EC),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안에 대한 수용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벌여야 할 만큼 그리스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은 상황에 대해, 다수의 서방 보수언론이 동시다발적으로 '포퓰리즘'과 '복지병(病)'을 원인으로 지목한 데 반해 크루그먼이 진단하는 위기의 원인은 유럽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태에 있었고, 거기에 더해 유로존(Euro zone)에 속해있는 그리스에게는 독자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결정권 마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그는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채권단이 요구하는 처방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끝없는 긴축과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는 계속될 것이고,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심각해질 것이 명확했다. 결국 지난 5일 그리스 국민의 61.31%는 'OXI(반대)'를 선택했고, 트로이카로 불리는 채권단의 긴축안은 거부됐다.

지난 2002년 유로화가 단일통화로 도입되고 유로존 내 개별국가들의 경제력 평균에 맞춰 통화가치가 결정되면서, 기본적인 경제력 격차를 가지고 있었던 서유럽 국가들과 남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환율은 오히려 역전되는 현상을 보일 수 밖에 없는 모순된 구조가 만들어졌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인위적으로 평가절하된 데 반해,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인위적으로 평가절상됐다.

이 인위적인 돈놀음 구조에서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는 누적돼 갔지만 정책적 조절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상황은 두번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적자가 누적될수록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자금은 더 많이 유입됐지만 이미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불과했다.

유입된 자금들은 경기부양이나 제조업 생산에 투입되기도 전에 은행권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빚으로 빚을 막는 '돌려막기'가 시작됐고 그럴수록 금리는 더 치솟았다. 투기성 금융자본의 도박장이 되기에 딱 좋은 구조가 만들어졌지만, 그리스는 손을 쓰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글로벌 대부업체'로 일컬어지는 IMF가 그리스를 상대로 '가혹한 긴축'을 요구하고 나오는 시나리오는 지난 1997년 한국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협상에 들어가면서 그리스 정부는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 등 '부자증세' 안을 제시했지만, 더 효율적인 채권추심에 팔을 걷어붙인 채권단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할 것을 요구했다.

대규모 실업과 임금삭감, 세율인상 등 고통이 가중될수록 사회적 안전망(safety net)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게 마련이지만, '가혹한 긴축'만을 요구해온 채권단과 이를 옹호하는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 마저도 '복지병(welfare disease)'으로 매도했다.

이러한 사태의 전모를 두고 '포퓰리즘'이나 '복지병'으로만 몰고가기 민망했던 이들이 여기에 더해 '파켈라키(fakelaki·촌지)'나 '루스페티(rousfeti·특혜)'를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하기는 했지만, 그 누구 하나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이는 없었다.

사실 '포퓰리즘'이나 '복지병'이 경제위기를 야기한 요인으로 지목될 만큼 과도한 복지지출이 그리스 사태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는 더 이상 정합하게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실 그리스의 복지지출 수준은 GDP 대비 30%를 밑도는, 유럽연합(EU) 평균을 놓고 봐도 그 이하였다는 점에서 일말의 논리적 설득력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에서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던 반면 그리스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오히려 평균 수준을 밑돌았다.

저비용-저복지 구조에서 고비용-고복지 구조로 이행해야 하는 우리에게서도 '복지 포퓰리즘'은 여전히 중요한 논쟁거리다. 그리스 발(發) '긴축논쟁'이 우리에게 이르러 난데없이 '복지망국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창조물로 전환되는 과정만 되짚어봐도 그 사회적 논란의 크기는 충분히 가늠이 된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복지병'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자본의 요구를 거부하고 강압으로부터 저항해가는가이다. 그리스 사태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그 끝없는 긴축과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를 끊고 어떻게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을 끝내가는가이다.

1997년 한국은 감내하고 버텼지만, 2015년 그리스는 저항하고 있다. 긴축이냐 복지냐를 양자택일 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그리스가 그 전례를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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