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사발'로 소갈증 해소…심신수양 방편 삼기도
[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 '천화사에 놀며 차를 마시고 동파의 시운을 쓰다(遊天和寺飮茶 用東坡詩韻)'.

이규보가 차(茶)에 대한 소양이 풍부했다는 것은 그가 남긴 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다신(茶神)이라 불리는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과 노동(盧仝)이 지은 「다가(茶歌)」를 익히 알고 있었으며, 차의 약리적인 효능에 관한 부분만 발췌해 놓은 '약보(藥譜)'를 소지품 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차에 대한 소양이 남달랐다.

차의 약리작용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는 것은 각성 효과와 소갈 효과이다. 이외에도 마음을 수양하는 방편으로 삼은 경우도 등장한다.
 
 <시후관에서 쉬다(憩施厚館)>
 舊有文園病(구유문원병) 옛부터 문원의 병이 있었지만
 盛夏復遠遊(성하부원유) 무더운 여름에 다시 멀리 유람하네
 試嘗一甌茗(시상일구명) 시험 삼아 차 한 사발 마시니
 氷雪入我喉(빙설입아후) 시원한 얼음이 목으로 넘어가네
 松軒復暫息(송헌부잠식) 소나무 정자에 다시 잠깐 쉬니
 已覺渾身秋(이각혼신추) 이미 온몸이 가을 기분이네
 ……

 
작자는 문원의 병을 앓고 있었다. 문원은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역임했던 벼슬 이름이다. 그는 문장에 뛰어났지만 소갈병(消渴病, 당뇨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살았다. 이규보 또한 소갈병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물 대신 차 한 사발을 마시니 얼음을 먹은 듯 갈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물을 자주 마시더라도 다뇨(多尿)에 의해 갈증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소갈증은 여름에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소갈증은 술을 멀리해야 하는데, 작자는 그러지 못하면서 유람을 하고 있었으니, 작자가 겪은 소갈증은 심각했을 것이다. 이때 차 한 사발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며 가을을 느꼈던 것이다.
 
 <천화사에 놀며 차를 마시고 동파의 시운을 쓰다(遊天和寺飮茶 用東坡詩韻)>
 一筇穿破綠苔錢(일공천파록태전) 지팡이 잡고 동전 모양의 푸른 이끼 뚫으며 가니
 驚起溪邊彩鴨眠(경기계변채압면) 시냇가에 졸던 채색 오리는 놀라 깨어났네
 賴有點茶三昧手(뇌유점차삼매수) 차 달이는 오묘한 솜씨에 기댈 수 있고
 半甌雪液洗煩煎(반구설액세번전) 설액(雪液) 반 사발로 번민으로 끓는 속을 씻네

 
지팡이 집고 천화사로 가는 길에 이끼가 많이 깔려 있었다. 동전 모양의 이끼를 지팡이로 찍어가며 사찰로 향하는데, 그 소리에 채색 오리가 낮잠에서 깨어났다. 작자가 재미삼아 지팡이로 찍어댔던 것이 오리의 일상에 균열을 가게 한 셈이었다. 이끼길을 지나 천화사에 도착하니 승려가 차를 말고 달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오묘한 솜씨'라 칭할 만했다. 차를 반 사발 마시고 나니 마음속에 끓고 있던 번뇌가 일시에 사라지는 듯했다.

여기서 작자가 마신 설액(雪液)은 가루차를 거품 내어 만든 차(茶)이다. 번뇌가 사라진 것은 차를 마시기 이전부터 예고되고 있었다. 이는 차를 달이는 절차와 관련된 오묘한 솜씨를 지켜보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차를 달이는 것과 차를 마시는 것은 모두 마음속의 번뇌를 씻어내는 과정이다. 마시는 데에만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마실 수 있게 만드는 과정도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이었다. 흔히 사찰에서 차를 관리하고 승려들이 차를 말고 달이는 과정을 통해 심신수양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도 이런 이유와 밀접하다.

작자는 무심하게 지팡이로 이끼를 찍는 바람에 오리가 낮잠을 포기한 것도 자신의 '끓는 번뇌'와 관련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자는 설액(雪液) 한 사발을 더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