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정 강희산·보산 김매자 보산미술관 작가
▲ 보산 김매자
▲ 보산미술관 전경
▲ 야정 강희산
스승 강희산' 문인화 등 창작 '제자 김매자' 황토로 글씨 빚어 … 11월 '사제전' 계획

스승과 제자. 어려운 관계다. 스승이 제자를 두는 궁극적 목적은 '청출어람'이다. 스승은 가르친다. 훗날 자신을 뛰어넘는 실력과 인성을 가진 제자를 길러내기 위해. 제자는 따라간다. 자신의 꿈 꾸는 여정을 걸어온 스승의 길을.

야정 강희산(61)과 보산 김매자(53). 그들은 스승과 제자다. 그런데 오누이처럼 보인다. 때론 동료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일교차가 심한 5월 어느 날. 기자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보산미술관'을 찾아갔다. '영흥도 유일의 미술관'. 보산미술관의 5월은 개관 2주년과 스승의 날이 끼어있는 달이었던 것이다.

바다 위로 물안개가 피어나고, 나뭇잎들의 빛깔이 짙어지며 영흥섬은 이제 막 부풀어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야정의 '화려한' 문인화처럼, '두툼한 질감의 황톳빛' 보산 글씨처럼….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 475의 9. 보산미술관은 누드건축공법의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건물 외벽이 콘크리트를 발라 그대로 말린 방식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잔뜩 치장한 외양을 갖고 있어서일까. 보산미술관은 그래서 더욱 예술적으로 보였다.

"아, 먼 길 오셨습니다. 차 막히지 않았나요?"

너댓 명의 여성 앞에서 소나무를 그리던 야정이 기자를 쳐다보며 인사를 했다. 그의 왼 손은 바지주머니에, 오른 손엔 붓이 들려 있었다. 쓱 쓱. 야정의 붓이 화선지를 거침없이 누볐다. 네 명의 여성들이 그의 붓 끝을 주시했다.

"이게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죠? 자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 해요."

스승의 모습을 보는 보산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는 미술관 관장이다. 보산은 또한 야정에겐 제자이지만, 네 명의 여성들에겐 스승이기도 했다.

몇 분 뒤, 거짓말처럼 한 폭의 문인화가 탄생했다. 야정의 문인화는 화려해 보였다. 수채화 같기도 했고, 유화처럼도 느껴졌다.

"자, 여기선 이렇게 눌러주는 거야."

야정의 붓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선이 진지했다. 그림을 거의 완성한 야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술은…, 사기야."

보산미술관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 문인화 강의가 열린다. 지난 2013년 개관한 이래 계속 해온 프로그램이다. 인천의 여느 섬들처럼 영흥도는 문화생활이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보산미술관의 문인화강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들도 아직은 소수이다. 지금 보산미술관에서 수강하는 사람은 모두 네 명이다. 물론 앞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미술관을 거쳐갔다.

"강좌는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호흡하기 위해 하는 거구요. 이 곳은 사실 제가 작품을 하기 위해 만는 곳입니다."

보산이 미술관에 대한 설명을 해 줬다. 미술관을 지을 당시, 보산은 자신의 작은 작업실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승의 권유로 미술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흥도 유일의 대중미술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보산미술관 전시실엔 야정과 보산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1전시실은 강희산 선생의 상설전시장이다. 10군자 열폭병풍에서부터 글씨, 문인화 수십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김매자 선생의 작품은 2전시실에 걸려 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황토로 '글씨를 빚는' 작가이다. 우리나라 농촌의 서정과 질박한 정서가 그의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오는 11월 스승과 제자는 '사제전'을 열 계획이다.

"올해가 (야정)선생님의 환갑이구요. 저 역시 새로운 작품을 평가받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산이 전시 배경을 설명해 줬다. 사제전은 인천과 서울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인천과 영흥도의 정서가 듬뿍 담긴 그들만의 독특한 창작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붓을 내려놓은 야정이 강의를 이어갔다.

"여러분들, 예술은 뭘로 하는 것 같아요?"

제자들이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스승의 말을 기다렸다.

"궁둥이로 하는 겁니다. 물론 재능도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결국은 아주 오랫동안, 끊임없이 붓을 잡은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얘기 들어봤지요?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말인즉슨, 예술도 결국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의 재능에 99%의 노력이 대가를 만든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메시지였다. 지금도 야정은 작품을 하고 나면 손에 쥐가 나고 어깨를 못 펼 정도로 앓아 눕는다고 털어놨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벼루에 구멍이 3개나 날 정도로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화선지 없앤 만큼, 먹물 없앤 만큼 실력은 정직하게 나타날 겁니다. 머잖아 우리 미술관에서 정말 좋은 예술가가 태어나길 바랍니다."

강의가 끝나고 다 함께 미술관을 나섰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야트막한 언덕 위 오롯이 선 보산미술관으로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의 얼굴 위로 5월 한낮의 햇살이 떨어져 내렸다. 보산미술관에 햇살 만큼이나 눈부신 사람들의 웃음이 부서져 내렸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