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소연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故 이귀례 이사장 뒤이어 올해 '차인 큰잔치' 주관
차인 2000여명 참가·음식 100여점 출품 '행사 다채'
"우리 얼·혼 고스란히 녹아있어" 차문화·예절 강조'
▲ 최소연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이런 차 보신 적 있나요?"

그녀가 옥빛이 흐르는 다기 뚜껑을 열어 안 쪽을 보여주었다. 사기 주전자 안, 모자이크처럼 네모낳게 잘려진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차예요. 차는 잎을 발효시켜 덖은(볶는 것과 비슷한 과정) 뒤 상처를 내 발효를 시키는 '구증구포'의 과정을 거쳐야 제 맛이 납니다. 이 대나무차 역시 여느 찻잎처럼 그 같은 단계를 지나 태어난 것이지요."

최소연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이 다기에 따뜻한 물을 채우며 말했다. 조금 뒤, 그가 두 손을 모아 차를 따라주었다. 누런 빛깔의 대나무차는 담백하면서도 달작지근했다. 이것은 대나무향일까? 풋풋한 향기가 오래도록 입안을 감돌았다. 아무리 마셔도, 언제 마셔도 질리지 않는 음료가 있다면 그건 '차'일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차는 본디 이렇게 우려내서 마셔야 제 맛이 나지요. 많은 분들이 차의 이름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고 이귀례 이사장) 말씀에 따르면 대추차나 인삼차, 쌍화차와 같은 종류는 진정한 의미의 차라고 할 수 없지요. 그건 펄펄 끓여 먹는 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차 두 잔을 비운 뒤 물어보았다.

"준비는 잘 되시는지요?"

오는 16일 인천종합문예회관 광장에서 열리는 '제35회 차의 날 기념 제26회 전국 차인 큰잔치'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번 잔치는 고 이귀례 이사장의 뒤를 이어 올해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을 맡은 그가 치르는 첫 공식행사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지켜보는 사람도 많고, 그 역시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뭐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마음이 어수선 하네요."

최 이사장 역시 오래 전부터 차문화 행사의 중심에서 일을 해온 터였다. 그런데 이번엔 행사를 준비하는 게 많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지난해까지 엄마가 계시니까 알아서 잘 하시겠지 하며 별다른 책임감이 없었어요. 또 실제로 잘 알아서 하셨구요. 그런데 이제 제가 총책임자가 되어 행사를 준비하다보니 갑자기 외로워지고 두려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어머니 이귀례 이사장과는 사제지간이기도 했다. 차를 가르치고 행사를 함께 치르며 꾸지람도 많이 하셨고,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호통도 칭찬도 없다. 스승님이자 어머니의 자리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겉으론 웃고 다니지만 사실 요즘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돕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준비상황은 꼼꼼해 보였다. 규방다례보존회와 한국차문화협회가 주최하고 인천시, 인천시의회, 문화체육관광부, 가천길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엔 전국의 차인 2000여 명이 참가한다. 전국에서 차를 재료로 한 음식 100여점이 출품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차 만들기, 박물관 체험에서부터 차예절 발표와 축하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제35회 차의 날 기념 제26회 전국 차인 큰잔치'는 차문화의 종주국이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나라임을 확인하며, 우리의 차문화를 전국적으로 확대, 보급시키는 차의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일 행사장에 가면 '차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어?'란 감탄사가 나올 정도이다. 이 가운데 '차음식 만들기'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해오던 행사다.

"그 때 특허를 냈으면 지금 돈 억수로 벌었을 겁니다(웃음). 그럼 그 돈으로 행사 치르고도 남았을 텐데…."

고 이귀례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행사의 많은 부분 사비를 들여야 하는 행사에 대한 어려움을 최 이사장은 이같은 우스갯 소리로 토로했다. 생전 행사를 치를 때마다 자비를 써야 했던 고 이귀례 이사장은 "나는 푼수야, 푼수!"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차를 마실 때면 설탕을 찾거나, '차'라는 얘기가 나오면 자동차로 인식하던 시절, 규방다례보존회와 차문화협회는 차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전국적으로 차음식이 보편화된 것은 그 때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차문화처럼 비인기 종목이 지금의 전국행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 이귀례 이사장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을 최소연 이사장이 대를 이어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차문화와 예절'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는 최 이사장의 철학은 무엇일까?

"교양과목임에도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 지 모릅니다. 매번 45명으로 강의인원을 제한하는데 항상 몰려서 미안할 정도입니다."

강의와 실습으로 진행되는 '차문화와 예절'을 배운 학생들은 사고방식은 물론이고 몸가짐부터 달라진다고 최 이사장은 말한다. 차를 만들고 이를 즐기는 과정이 하나의 엄숙한 통과의례처럼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 뿐 아니다. 한국차문화협회 전국지부를 통해 차를 배운 아이들은 예의 바르고 현명한 아이로 성장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차를 가르치려는 이유다.

"차에는 예절교육, 인성교육, 우리의 얼과 혼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차교육이 초중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복을 입은 채 두 손으로 차를 따르는 최 이사장의 모습에서 그의 어머니 모습이 겹쳐져 다가왔다. 규방다례보존회 사무실 하나 가득 차의 향기가 피어났다.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제35회 차의 날 기념 '제26회 전국 차인 큰잔치'는...

오는 16일 오전 11시~오후 5시 인천종합문예회관 광장에서 열리며, 전국의 차인과 회원 2000여명이 참가하는 '전국 최대의 차축제'이다. 우리 전통 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전통 차를 국내외적으로 보급하고, 효행사상과 예절을 확산시키자는 뜻으로 26년전 처음 시작됐다.

이 기간 차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으며, 정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차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선비차시연, 선고차인에 대한 묵념, 헌다례, 차의 날 선언문이 낭독되는 1부 기념식이 끝나면 100여 종의 차음식 전시와 경연대회가 이어진다. 부대행사로 비보이, 마술공연과 규방다례 시연이 준비됐으며, 누구라도 다양한 차와 다식, 한과 등을 맛 볼 수 있다. 5월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차문화 나들이를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