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인천에서 시작한 최초의 역사-37.도선사
유항렬, 한국 최초 정식면허 받아
▲ 갑문 입거시의 도선 장면.
"중세 이전 도선사는 해양을 횡단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황해술의 달인이었다.

선박들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으면 그곳의 연안 정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원주민에게 상당 한 수준의 대가를 지불하거나 강제로 승선을 시켜서 지역 정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 후 항해술이 보편화되면서 해양에서의 도선 필요성은 줄어든 반면 선박이 대형화됨에 따라 항만, 좁은 수로, 자연 조건에 정통한 항해사들을 주축으로 해 특정 지역에서의 입·출항, 접안과 이안 등을 하는 도선 서비스가 이루지게 되었다."(이귀복·'한국도선사협회 30년사')

1883년 개항되면서 인천항은 극심한 간만의 차와 복잡한 수로 등에 따라 도선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개항 초부터 우리나라는 해운 자주권을 확보치 못한 채 열강에 의해 이끌려 갔고, 1910년 국권 상실 후에는 일제가 모든 해운 행정을 틀어쥐었다.

그런 연유로 도선사의 역할과 위상, 지위 등에 관한 법률과 체계적인 조직은 1915년에 공포된 조선총독부령 제5호인 '조선수선령'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이는 일본서 시행되고 있던 '수선법(水先法)'에 준거한 것으로 총독부 해사국은 도선사 시험을 주관하는 한편 면허장도 발행하였다.

한국인 최초로 정식 면허를 받은 도선사는 1937년 5월 인천에서 탄생됐다.

유항렬(사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1901년 1월 충남 공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1920년 일본 나고야중학교를 졸업한 뒤 해양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일본관립고등상선학교에 입학해 수업했다.

그는 재학생 신분으로 일본우선회사의 실습과정을 거쳐 1925년 졸업 직후 조선우선주식회사에 입사해 1등 항해사를 지냈고, 1928년 갑종선장 면장을 받아 인천에서 활약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에 면장을 갱신 받았는데, 24년 8개월간 인천항 도선사 자리를 지킨 해양 역군이었다.

유항렬 도선사는 1961년 정년퇴임하게 되자 도선사 배순태, 김동균, 윤영원 씨 등과 협의해 1962년 1월 인천항도선사조합을 결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선사 후배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정성을 모아 인천항 갑문 옆에 기념비를 건립한 바 있다.

(사)한국도선사협회가 발족한 것은 그로부터 15년 뒤의 일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