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세계최대의 발명품인 한글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이 이따금 고개를 들곤 한다. 한글에 한자를 병기한다니, 넘쳐나고 있는 영어를 한글 속에 병기하자고 할 일이다. 늘 사용하고 있으니 그 가치를 모를 수 있다지만, 한글 운용능력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하는 주장이다.
한국어의 상당부분이 한자에서 왔으니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자를 아는 자들의 논리일 뿐 한국어 사용에 한자의 알고 모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자를 아는 자들은 한자의 가치를 말하지만, 한자를 모르는 자들은 한국어에서 한자의 가치 따위는 없는 것이다. 중국인은 한자가 모국어이니 쓰는 것이고 일본인도 한자가 모국어와 같으니 쓰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뛰어난 한글이 있는데 한국인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자를 알고 있는 자들의 시대착오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한자를 모르면 단어의 뜻을 모를 것 같지만 천만에 그런 일은 없다.

단어들의 어원을 이해하고 신조어를 위해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한자어를 국어처럼 사용하던 시대의 발상이다. 설령 한자의 지식이 한글운용에 도움이 된다 해도, 우리는 한자의 의존도를 낮추고 한글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뜻글자가 아닌 한글로도 어원을 익히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한자의 조어력이 뛰어나지만, 한글로도 얼마든지 단어를 만들고 조합할 수 있는 것이다. 혹 한국어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를 발전시켜 나가면 되는 일이지 한자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는 발상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한국어 사용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한국어 내에서 찾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인이 이미 한자 없는 한국어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고 있다. 서적이나 신문뿐 아니라, 메일이나 전화문자에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 불편함을 느끼거나,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자는 아무도 없다.

작금의 한국어 사용의 문제점은 한글을 한자로 못 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 운용능력의 급격한 저하에 있다. 최근의 젊은이들은 표현력과 문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한국어를 바르고 품격 있게 말도 못하고 글도 못쓴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등록금이 비싸다 아우성치는 대학에서 초중고에서나 해야 할 글쓰기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고 있겠는가?
경어사용의 오류나 욕설 등이 일상화 되고, 어법이나 의미가 맞지 않는 표현들이 정착되다시피 하여, 오히려 오용을 허용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언어표현도 변하고 성숙해져야 하는데, 취학 전 아동의 표현이 대학생이 된 자의 표현과 같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TV에서는 말장난이나 하는 연예예능프로그램도 아닌데 젊은 진행자들이 시청자를 상대로 편한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가벼운 말들을 사용하고 있어 한국어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국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에는 옳으니 그르니 하고 있으니 본인들이나 제대로 된 표현을 사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어는 한자처럼 글자체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비슷한 발음이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으면 그 어느 쪽도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국민들이 저항감 없이 늘 사용하는 말들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한글이 한자와 달리 유연하게 운용될 수 있음을 간과한 처사이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표현을 단지 사전에 없다하여 틀리다라고 지적할 수도 없다. 언어는 변화하는 것으로 사전은 편찬 이전의 사실에 기초한 기술이지 편찬 이후의 변화는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찬 당시에도 제반 현상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어교육의 문제는 품격 있는 한국어를 사용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저속하거나, 잘못 변화된 표현, 경어사용의 오류 등과 같이 잘못 사용되는 한국어의 환경을 바로잡는 것이 교육의 당면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자는 중국어로서의 한자이면 된다. 한국어 운용에서의 한자의 지식은 학문을 하는 자들이면 충분하다. 한자를 알고 있으면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는 자들의 한국어 사용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뭐든 알아서 손해 볼 일은 없지만 한자만큼 익히는데 시간과 노력이 드는 문자는 세상에 없다. 단순한 글자 익히기에 모든 한국인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국제사회에서 경쟁하기 위해 영어가 필수라는 주장처럼 앞으로 중국어를 알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한자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옛 사고에 사로잡혀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발상은 진부할 뿐이다. 분명 한국어에 한자어가 많지만, 한자어의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국어의 발전임을 깨닫고, 오히려 한자어보다 고유어가 더 많이 사용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교육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엉망인 한국어를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는 교육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상황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