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34>김용(金涌)의 부평 노래 제13장
▲ '운천집' 부평 노래 제13장
 부평옥사를 모두 처리한 김용(金涌, 1557~1620)은 서울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제일강산(第一江山列眼前)을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내 부평과 관련하여 자신이 느낀 것을 모두 13장의 노래로 나타냈다.

제12장을 통해 보건대, 부평은 넓디넓은 평야와 뭐든 낚을 수 있을 듯한 물가, 그리고 순박한 인심이 어울려 있는 공간이었다. 육지이건 물가이건 산물(産物)이 풍족하니 사람들 간에 사소한 송사(結繩, 결승)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구름처럼 몰려든 여자들이 있다 해도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흰 저고리 쑥색 수건을 쓴 여인(縞衣綦巾聊樂我)'이라는 《시경(詩經)》의 구절을 견인하여 부평 여인을 그려낸 것이 주목된다. 비록 가난하고 누추하나 그런대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여인을 지칭하는 게 '흰 저고리 쑥색 수건(縞衣綦巾)'이란 표현이다. 작자는 부평의 여인들을 통해 《시경(詩經)》의 구절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바라는 바는 모두 여기' 부평에 있다며 제12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음은 제13장의 노래이다.
 
 洋洋左右有餘師(양양좌우유여사) 좌우에 충만할 정도로 스승이 있고
 格言嘉謨如掌指(격언가모여장지) 격언과 좋은 계책은 손으로 가리키는 대로 있네
 千載芳蹤亦可尋(천재방종역가심) 천 년의 아름다운 자취 역시 찾을 수 있고
 佳處萬里如身履(가처만리여신리) 경치 좋은 곳 만 리는 내가 가본 것 같네
 此外紛紛何足道(차외분분하족도) 이밖에 분분하게 말해 무엇하리
 觀於海者難爲水(관어해자난위수) 바다를 본 자는 물 되기 어렵다네
 優游於此足以送餘齡(우유어차족이송여령) 이곳에서 유유자적 남은 인생 보내기에 족하지
 所冀身無大過耳(소기신무대과이) 바라노니 몸에 큰 허물이 없으니
 噫乎吾舍此復何歸(희호오사차부하귀) 아, 여기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갈꼬
 歸歟歸歟多樂事(귀여귀여다악사) 돌아가리 돌아가리 즐거운 일 많은데
 明朝掛冠便拂衣(명조괘관편불의) 내일 벼슬을 그만두고 옷자락 털어낼 터
 取筆書之所以志(취필서지소이지) 붓을 잡아 생각한 것을 쓰네
 
제13장에서도 부평 예찬을 하고 있다. 부평 일대를 조망해 보니, 대상들은 나의 스승으로 삼기에 족할 정도로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넓은 평야와 그것의 끄트머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고 있는 산은 과거에 '산빛이 있는 듯 없는 듯하다(山色有無中)'며 성현(成俔, 1439~1504)이 부평에 대해 남겼던 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천 년의 아름다운 자취'를 운운하며 이곳의 첫 지명 주부토(主夫吐)에서 장제(長堤), 수주(樹州), 안남(安南), 계양(桂陽), 길주(吉州)를 거쳐 부평(富平)이란 지명이 정착된 과정을 기억해 냈을 것이다.

특히 '이밖에 분분하게 말해 무엇하리, 바다를 본 자는 물 되기 어렵다'며 《맹자(孟子)》의 특정 구절을 견인하여 부평의 경관이 지닌 우수성을 진술하는 부분이 이채롭다. '공자가 노나라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 천하를 작게 여겼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자는 물이 되기 어렵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難為水)'는 구절이 그것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의 구절이 성인의 도가 큼을 나타내려는 표현이었다면, 김용(金涌)은 그것을 부평의 좋은 경치를 이미 봤으니 딴 데 가봐야 소용없다는 뜻으로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가겠냐'며 부평의 경관을 예찬하고 있다.

맡은 일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떠나야 할 사람이 과도한 수사를 동원하여 부평에 대해 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김용에게 부평은 꽤나 인상이 깊었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시경》, 《맹자》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하며 부평 예찬을 하고 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그 안에서 부평사람들이 자족하며 사는 모습이 작자를 부평 예찬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