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 전 남동소래아트홀 관장
공립이든 사립이든 공연장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라졌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공연예술계에 오랫동안 종사 해 온 필자가 자연스럽게 공연장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 오며 내린 결론은 공연장이 사라지거나 또는 되살아나거나 할 때 마다 공무원의 손에 그 존폐운명이 좌지우지 되며, 공직자의 역기능과 순기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70년대 중반, 장충동에 중앙국립극장을 새로 지었을 때, 많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전 국립극장이며 필자가 처음 인연을 맺은 '명동예술극장'을 증권회사에 팔아버린 이들도, 그로부터 30여년 후에 침체한 명동의 상권을 살리고 지역을 활성화 하겠다고 큰 예산 들여 증권회사의 간판을 떼고 다시 '명동예술극장'으로 되살려 놓은 이들도 모두 공무원이었다.

1976년에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공연예술인이 아닌 정신과의사 유석진박사가 사재로 구입·리모델링하여 그 운영을 필자의 스승(고 이원경선생)에게 위탁하였고 그 연유로 필자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삼일로창고극장'이 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직면하게 된 구청의 창고극장 폐관압력은 앞이 캄캄해 지는 큰 고통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렇게 생긴 게 무슨 극장이냐고 폐관하라는 공문을 보낸 이들도, 이런 예술공간을 살려서 지원해야한다고 연일 보도되는 각 매스컴의 시끄러운 기사를 잠재우기 위해 1년 유보조치 해 준 이들도, 딱 1년 후에 잊지 않고 다시 폐관공문을 보낸 이들도 모두 공무원들이었다. 그리고 다시보도… 다시 유보, 반복되기를 여러 해. 이유는 그 당시 담당공무원의 뇌 속에 '이런 공간이 소극장이라 부르는 진짜 공연장'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고, 공연법에도 없었고, 예술인들이 줄기차게 제출한 관련자료 와 탄원서를 믿지 않거나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여러 해 두고 끌어 온 이 고질적인 문제를 마침내 해결한 이들도 공무원이었다. 담당공무원은 나중에 외국에 직접 가보고, 확인하고서야 '삼일로 창고극장'을 공연장으로 인정했으며 이에 따라 공연법개정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한 결과, 마치 꿈 속 처럼, 대한민국 공연문화예술계의 80년대는 '대학로 탄생'을 보게 되었다.

그 후, 대학로 포함 전국에 별의 별 소극장들이 존재하며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시작과 과정은 많은 우여곡절의 긴 스토리를 안고 있지만, 결론은 단 한 사람, 담당공무원의 힘이 순기능을 발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쯤이면 공무원의 순기능이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힘'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길게 공무원의 힘에 대해 강조하는 까닭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3월, 인천일보가 연재한 '인천정체성찾기- 구(區)이름 바꿔야한다' 관련기사들을 읽었다. 서구(3일), 중구(4일), 동구(5일), 남구(6일), 남동구(9일)순으로 연재 된 기사의 주요골자는 '일제 때 왜곡된 인천의 행정구획·지명을 개정해야 한다'였다.


또 '반 왜색 엉뚱한 역명도 고치자(11일)'는 인천역, 동인천역, 도원역, 제물포역, 송도역 등 지리적·역사적 배경과 거리가 먼 생뚱맞은 역명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읽어도 공감할 내용들이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하며 시시때때로 그들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또는 의도적으로, 우리고유지명을 없애버리고 일본식 지명을 따다 여기저기 바꿔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부터 회자 되는 얘기지만, 인천지도를 보면, 서구는 제일 위 북쪽에, 서구 아래 동구, 동구 아래 중구, 중구 옆에 남구… 과거가 그랬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떠안게 된 과제를, 지금 우리도 과거를 닮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에게 더 큰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 후손들이 동서남북이 헷갈리는 인천에서 살며 조롱거리가 되게 할 것인가? ' 공무원의 긍정의 힘'은 최소한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소홀해선 안 되며, 사려 깊게 접근하여 마침내 해결하기를 응원한다. '삼일로 창고극장'의 경우처럼 멀리 외국까지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오직 인천시민과 오래된 전문가들에게 물어 절차를 밟아 실행한다면 오히려 역사가 기록해 줄것이며, 인천시민의 박수갈채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