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33>김용(金涌)과 부평, 그리고 부평 노래 13수
▲ 부평관에 머물며 짓다(富平館留題)
김용(金涌, 1557~162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운천(雲川)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좌랑, 독운어사(督運御史), 체찰사종사관(體察使從事官)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운천집(雲川集)》, 《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 등이 있다.

 1614년 김용은 부평의 옥사를 조사하라는 광해군의 명을 받았다.
 
 <부평관에 머물며 짓다(富平館留題)>
 富平形勝冠畿州(부평형승관기주) 부평의 승경은 기주의 으뜸이지만
 涼閣端宜倦客留(양각단의권객류) 서늘한 집 끄트머리에 피곤한 객은 머물러야만 하네
 槐柳種當前野曠(괴류종당전야광) 홰나무 버드나무 심은 바로 앞의 들판은 넓기만 한데
 軒窓開爲北山幽(헌창개위북산유) 창문을 열어보니 북쪽 산은 그윽하기도 하네
 公餘隱几消長日(공여은궤소장일) 공무 여가에 은좌[隱几]에서 긴 하루 보내다가
 睡後哦詩遣漫愁(수후아시견만수) 졸고 나서 시를 읊더라도 걱정만 남네
 莫向明朝吹畫角(막향명조취화각) 내일 아침엔 뿔피리 불지 마라
 盈庭造備白人頭(영정조비백인두) 뜰에 가득한 조비(造備)가 사람의 머리 세게 하기에
 
 작자는 자신이 담당한 옥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간혹 의자에 기대 졸기도 하지만 깨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일거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내일 아침에 불어댈 기상 피리 소리를 원망할 정도로 일이 쌓여 있었다. 실제로 죄를 심문하기 전에 사건에 관계된 사람과 물건을 갖추어 놓는 것을 조비(造備)라 하는데, 그것이 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게다가 부평의 승경(勝景) 안에 작자가 놓여있었으니 마음은 찹찹하기만 하다. 넓디넓은 들판과 그윽한 산을 통해 보건대 '부평의 승경은 기주의 으뜸'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복잡한 일을 담당해야 하니, 작자가 자신을 표현한 대로 '피곤한 객'이었다.
 
 百爾所思(백이소사) 백방으로 생각해도
 不如我所之(불여아소지) 내가 갈 곳이네
 臨河河上三間舍(임하하상삼간사) 강변 강물 위의 세 칸 집에 있으니
 第一江山列眼前(제일강산렬안전) 제일강산이 눈앞에 나란히 있네
 無邊風景誰爭者(무변풍경수쟁자) 끝없는 풍경을 누가 다툴까
 倘佯隨意採或釣(당양수의채혹조) 맘대로 배회하며 나물 캐거나 낚시 하겠네
 鮮食美茹無不可(선식미여무불가) 좋은 고기와 반찬 없는 게 없고
 三杯濁醪有妙理(삼배탁료유묘리) 석 잔의 막걸리에 묘한 이치가 있네
 縞衣綦巾聊樂我(호의기건료악아) 흰 저고리 쑥색 수건을 쓴 여인이여 나를 즐겁게 하네
 理亂黜陟了不聞(이란출척료불문) 이란과 출척을 끝내 듣지 않더라도
 淳風不在結繩下(순풍불재결승하) 순박한 풍속은 결승 아래 있지 않네
 閒閒此間有何事(한한차간유하사) 한가한 사이에 무슨 일 있겠나
 淨几明窓絶塵累(정궤명창절진루) 깨끗한 탁자 맑은 창가에 티끌 하나 없어
 盥手開卷儼相對(관수개권엄상대) 손 씻고 책을 펴고 엄숙히 마주하더라도
 所慕之人咸在此(소모지인함재차) 사람에게 바라는 바는 모두 여기에 있네
 
 작자는 부평 옥사를 어지간히 끝낸 후, 아이에게 지필을 가져오게 하여 부평에서 느낀 소회를 바탕으로 노래 13장을 지었다. 위의 노래는 제12수의 노래이다.

 부평은 작자의 눈과 입, 그리고 마음을 즐겁게 했던 공간이었다. 눈에 포착된 부평의 승경들은 평소에 자신이 바라던 것들이었다. '백방으로 생각해도 내가 갈 곳이(百爾所思 不如我所之)'라며, 그 이유에 대해 하나씩 거론하고 있다. 제일강산의 풍경 속에서 마음 가는 대로 '나물 캐거나 낚시' 할 수 있는 부평이 좋기만 하다. 게다가 '이란과 출척(공무원에 대한 평가)'를 내릴 필요 없고, 소박한 정치라도 개입(結繩, 결승)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순박한 부평의 인심이 더 더욱 좋다.

 결국 승경과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한가하게 독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부평에 대해 '사람에게 바라는 바는 모두 여기'에 있다 했던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