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인천에서 시작한 최초의 역사-31.커피
설탕덩이에 커피가루 조합 '양탕국' 제조
▲ 미국 잡지 하퍼즈 위클리에 수록된 대불호텔(오른족 앞). 간판이 달려 있다.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커피 공화국'이 된 듯싶다.

한 잔에 3000~4000원 하는 커피(아메리카노 기준)를 연간 1인당 338잔을 마신다는 통계와 8300억원을 육박한다는 원두커피 전문점 의 시장 규모를 뒷받침 하듯 열풍을 맞고 있는 '바리스타' 교육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커피가 언제, 어느 곳을 통해 들어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식적인 커피의 도입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사 제44권에 실려 있다.

"1892년 구미 제국들과 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커피를 전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어서 한국사는 "특히 왕가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관에 있는 동안 익숙해져 아주 좋아했다"며 "1902년 손탁 여사가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자리에 서양식 호텔을 개업했고, 이곳에서 처음 커피를 팔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술은 국내 최초의 호텔이 인천 '대불(大佛)호텔'이었다는 사실과 1885년 4월5일 부활절 날 오후 이 호텔에 머물렀던 아펜젤러 목사의 '캘리포니아 크리스찬의 주장'이라는 선교 보고서(서울 정동교회ㆍ'자유와 빛으로')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호텔 방은 편안할 정도로 컸지만, 상당히 더웠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일행은)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서양 음식이 잘 마련되어 있었고, 입에도 잘 맞았다"고 아펜젤러 목사는 전했다.

그 만찬 자리에 커피가 빠졌을 리 없다고 보는 것은 서양의 식습성상 상식이다.

그렇듯 양탕국(洋湯국ㆍ커피의 별칭)은 서울의 왕실보다 인천의 저자거리에서 먼저 맛보았을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이때의 커피는 설탕덩이 속에 커피가루를 넣은 '설탕 조합 커피'였을 것인데, 문제는 '커피' 자가 딱 떨어지는 자료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점이다.

'대불호텔' 간판에 "FRESH BREAD & MEAT(신선한 빵과 고기)"라고 만 소개돼 있고, "COFFEE" 자가 없는 것이 애석하다. 그렇다고 해서 1885년경 대불호텔에서 커피를 팔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메뉴' 등 관련 사료의 발굴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