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28) 박필주와 비룡산(飛龍山)
▲ 여호집(黎湖集)
박필주(朴弼周, 1680~1748)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숙종 43년(1717)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고 이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남긴 문집으로 <여호집(黎湖集)>, <독서수차(讀書隨箚)>, <주자왕복휘편(朱子往復彙編)> 등이 있다.

 다음은 <인천을 향해 가는 길(歸路向仁川)>이란 제목의 시이다.
 
 客行秋正半(객행추정반) 나그네의 가을 반이나 지나고
 歸路少人烟(귀로소인연) 가는 길에 인가는 드무네
 衣濕思親淚(의습사친루) 어버이 그리는 눈물에 옷이 젖는 사이
 心驚近海天(심경근해천) 마음 놀랄 정도로 바다 가까이 왔네
 斜陽明遠浦(사양명원포) 석양빛은 먼 포구를 환히 밝히고
 暗水帶低田(암수대저전) 개울물은 낮은 논을 두르고 있네
 鄕山靑數點(향산청수점) 고향의 푸른 산은 한두 개인데
 回首更依然(회수경의연) 머리 돌려 바라보니 예전 그대로이네
 
 작자는 가을이 반쯤 지나서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으로 오는 도중에 돌아가신 어버이 생각에 옷을 적시기도 했지만 어느덧 바닷가에 이르렀다. 작자가 가는 길에 멀리 포구가 보였고 가깝게 개울물에 둘러싸인 논들이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시의 제목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외가(是先妣外鄕)'라는 설명이 부기돼 있다. 시를 통해 보건대, 과거에 그의 어머니를 따라 방문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고향 산(鄕山), 예전 그대로(更依然)'라는 표현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작자에게 인천에 대한 과거 기억에는 먼 포구(遠浦), 낮은 논(低田), 민둥산(山靑數點) 등이 저장돼 있었다.

 다음은 <인천에 머물며 새벽에 비룡산에 올라 바다를 보다(宿仁川 朝登飛龍岡 望海)>라는 시이다.
 
 振衣千仞一望洋(진의천인일망양) 천 길 산등성이에서 옷을 털고 바다를 바라보니
 縹緲孤峰壓大荒(표묘고봉압대황) 묘연한 외로운 봉우리는 황량한 땅을 누르고 있네
 天際浮雲迷北極(천제부운미북극) 하늘끝 뜬 구름은 북극성을 흐릿하게 하는데
 海邊群嶂見南陽(해변군장견남양) 바닷가 봉우리들 사이로 남양이 드러나네
 旅遊覽物供多病(여유람물공다병) 사물을 관찰하는 나그네는 많은 병을 지녔기에
 秋半登高只斷膓(추반등고지단장) 깊은 가을 높이 올라도 애만 끊어지네
 謾有悲懷同宋玉(만유비회동송옥) 부질없이 슬픈 회포는 송옥(宋玉)과 같지만
 恨無詞賦動江鄕(한무사부동강향) 한스러운 것은 강 마을 진동하는 사부(詞賦)를 짓지 못하는 것이네
 
 작자는 비룡마을 언덕(飛龍岡)에서 주변을 조망하고 있다. 그가 오른 곳은 글자로 표현된 대로 '강(岡, 언덕 또는 산등성이)'인데, <조선지지자료>에 의하면 '비령이(飛龍山)'이다. 현재 인하부고와 인하대 기숙사가 위치한 곳으로 추정된다.

 '천 길 산등성이에서 옷을 턴다(振衣千仞)'는 것은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서 견인한 표현으로, 매우 상쾌(爽快)한 상태를 가리킨다. 새벽녘에 언덕에 올랐으니 시각이건 후각이건 상쾌했을 것이다. 어두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눈에 포착된 내륙 쪽의 봉우리는 묘연하게 땅을 누르고 있는 듯하고 바다 쪽의 봉우리 사이로 남양이 보이는 듯했다.

 어둠의 끄트머리를 넘어서는 순간, 관찰자는 대상물의 낯선 모습들을 포착할 수 있기에 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이른바 시심(詩心)이 작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사물을 관찰하는 나그네가 많은 병을 지녔'다는 것은 질병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대상의 낯선 모습을 포착하여 그것을 시화(詩化)하려는 문학의 병(病)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작자에게 시심이 작동되지 않았다. 동쪽이 밝아오면서 대상물의 윤곽이 선명해졌지만 그것을 시화하는 데까지 진전되지 못했다. '애만 끊어지네(只斷膓)'는 그것을 반영한 표현이다. 이런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해 견인된 송옥(宋玉)은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제자로서, 〈구변(九辯)〉이라는 가을의 서글픈 정경을 읊은 대표적 작가이다. 결국 마지막에 표현한 것처럼 작자에게 '한스러운 것은 강 마을 진동하는 사부(詞賦)를 짓지 못하는 것'이었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