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25. 낡은 졸업 앨범 속의 친구들
▲ 축현국민학교 1966년 제 19회 졸업 앨범 속 6학년 6반 학생 86명의 모습. 당시 통계를 보면 국민학교 여학생 졸업자 중 30% 가량은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
'1960년대 전교생 5000 ~ 6000명 훌쩍'

늦깎이 입학 빈번·중학진학률 70%

'꿈' 접은 아이들 가사·점원 등 노동



졸업시즌이다. 정든 교실, 교정 그리고 친구들과 이별할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 학창시절의 추억은 낡은 앨범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진은 1966년도 축현국민학교 졸업(제 19회) 앨범에 담긴 6학년 6반 학생들의 모습이다. 담임은 송재정 선생님이다. 운동장 한 구석에 마련한 나무로 만든 이동식 계단에 반 학생 전체가 올라가 졸업기념 사진을 찍었다. 86명 중 그날따라 한명이 결석했고 그 아이는 나중에 사진관에 가서 따로 찍어 급우들 사진 옆에 오려 붙였다.

특이한 것은 안경 쓴 아이가 딱 두 명뿐이고 비만아로 보이는 아이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다소 경직돼 있다. V자를 그리는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드러내는 아이도 거의 없다. '절대 움직이지 마라'는 사진사의 주문이 있었겠지만 그만큼 그들은 힘든 시기를 이미 보낸 아이들이었다.

대부분 6.25 전쟁이 끝날 즈음인 1953년도에 태어난 그들의 얼굴에 굴곡진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뒷줄에 선 몇몇 아이들은 벌써 고등학생 티가 난다. 혼란기에 출생신고가 늦었거나 전쟁통에 취학통지서를 받고도 한두 해 미뤄 입학했거나 혹은 중간에 공부를 중단했다가 제 나이보다 저학년으로 편입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두세 살 어린 친구들과 졸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투명 습자지 위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사진 위치대로 적혀 있다. 전세옥, 이선영, 최현숙, 이호영, 김성자, 김영애, 임경실, 최금순, 변연옥…. 별 탈 없이 살아왔다면 그들은 지금 60대 초반의 할머니가 됐을 것이다. 사진 속 자신들의 모습과 비슷한 손주들이 있을 나이가 된 것이다.

같은 날 졸업을 했지만 모두 상급학교에 진학한 것은 아니다. 그들 중 70%(남자는 85%선)만이 중학생이 되었고 나머지 30%인 25명 가량은 경제적 어려움, 부모의 교육열, 건강 등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가사(家事)를 돕거나 가게 점원으로 취직해야만 했다. 간혹 정식 중학교 대신 고등공민학교나 기술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중학교 입시 재수 때문에 바로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치르고 가야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류중학교에 가기 위해 재수하는 국민학생이 적지 않았다. 인천에서 중학교 무시험 진학, 이른바 '뺑뺑이 추첨'은 서울보다 한해 늦은 1970년에 시작되었다.

참고로 1963년도 인천지역의 국민학교 졸업생 수는 29개교에서 남자 3198명, 여자 2576명으로 전체 5774명이었다. 이 숫자는 무시험이 시행된 첫해인 1970년도에 1만2809명(200학급)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인천으로의 유입인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던 시기였다.

축현을 비롯해 창영, 신흥, 송현, 송림, 서림, 만석 등 시내의 웬만한 국민학교는 한 학년에 보통 12반이 넘었으며 한 학급 정원이 90명 가까이 되었다. '콩나물 교실'이란 말이 이때 나온 것이다. 한 학교의 전교 학생 수가 5000~6000명은 훌쩍 넘었다. 사진 속 아이들이 졸업한 1966년도는 숭덕중학교와 광성중학교가 신설되었고 인화여자종합고의 개교 그리고 영화여자실업학교의 설립 인가 등 지역 내 학교 설립이 유난히 활발했던 해였다.

2015년 2월16일(월) 오늘은 축현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인천공립심상소학교라는 이름으로 1919년부터 중구 인현동에 문을 연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 자녀들이 많이 재학했다. 광복 후 축현공립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1948년 졸업을 '제 1회'로 친다. 2001년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전한 축현초는 오늘 '68회 졸업식'을 거행한다. 남자 58명, 여자 45명 모두 103명이 학교 문을 나선다. 한해 졸업생 수가 다해봤자 60년 전 앨범 속 한 학급의 숫자와 엇비슷하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