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인천시궁도협회장수필가
내가 처음 약국을 개업하던 76년 당시엔 지금은 한외마약으로 묶인 감기약들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었다. 그즈음, 매일 내 약국에 들러 2일간 6회에 나눠 복용해야 할 시럽제를 단번에 마시는 여성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미군을 상대하는 직업여성이었고, 감기약을 마셔야 수치심을 잊고 환각 속에 쾌락을 더 느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인천지방검찰청 구속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때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담당 검사와 사건을 심사했다. 도박보다 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재범률이 가장 높았던 범죄는 마약사범이었고 격리수용하거나 입원치료 말고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약사범은 팔목에 생긴 여러 개의 주사자국과 소변 검사로 적발할 수 있지만 6개월 전의 마약 투약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선 머리카락을 비롯한 체모 검사를 하면 가능하다. 어느 마약사범이 체모검사를 앞두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온 몸의 털을 면도기로 제거했지만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속되었다. 이유는 미처 항문에 난 체모까지는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에피소드가 있다.

박태환 선수의 아시안 게임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체육계가 좌불안석이다. 도핑(doping)은 운동선수가 경기능력을 일시적으로 높이기 위해 호르몬제, 신경안정제, 흥분제 등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운전면허 실기시험장에서 마음을 안정시킨다며 청심환을 복용하듯 전국규모의 궁도대회장에서 불안증을 해소하고 담력을 키운다며 술을 한잔 두잔 연거푸 마시다가 결승전에서 음주 측정에 걸려 우승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수 초 내에 시속 100㎞의 속력을 내는 경주용 자동차처럼 단시간 내에 운동신경을 최고치로 올리기 위해 흥분제를 복용한 선수가 때로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우도 있다.

호르몬제 역시 효과가 신비한 만큼 부작용 또한 크다. 남성호르몬제는 전립선암을, 갱년기 치료 여성 호르몬제는 유방암을 유발시킬 수 있다. 비아그라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데포(남성호르몬) 주사가 대세였다. 호르몬 주사를 고령자가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젊은이들은 말렸다. 외부에서 호르몬제를 계속 공급해 주면 인체 내에서 호르몬을 생성하는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남성 호르몬제를 투약하면 음성이 굵어지고 체모가 생성되며 성격이 거칠어지지만 여성 호르몬제는 남성의 젖 가슴을 크게 만들고 성격도 나긋하게 만든다.
40여 년 전, 60대 중반의 여성이 약국에서 주사약을 구입해 갔다. 다음날 약국을 찾아 온 그 여성은 주사를 맞은 후 유방이 부풀고 몸이 뜨거워 지며 남자 생각이 나서 한 잠도 못 잤다고 호소했다. 문제는 허리가 아파 진통 주사제를 구입한다는 것이 상품명이 비슷한 여성 호르몬제를 구입해 간 것이다. 약학대학 시절, 시계도 밥(태엽)을 많이 주면 죽듯 사람 역시 밥을 많이 먹으면 죽는다며 독·극약이 따로 없다는 교수님의 멘트가 지금도 떠오른다. 재물도 과욕을 부리면 해(害)가 되고 자신의 체질(신분)에 맞지 않은 것을 섭취하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듯 독이 된다는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