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1991년
부평에선 수많은 굴뚝이 쉴 새 없이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말까지 공업 도시였던 부평이 지금은 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의 아파트 도시이다. 전국적으로 30여개 인구 50만명 이상 행정자치구들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부평은 IMF이후 공장들이 떠난 자리를 거의 예외없이 아파트가 접수했다. 산곡동의 한국종합기계 자리에는 한화아파트가, 청천동의 동양철관에는 대우아파트가, 전남방직에는 금호아파트가, 삼산동의 코리아스파이스 자리에는 엠코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나마 숨통역할을 하던 삼산동과 계산동 논밭에까지 고층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차면서 부평 어디를 둘러봐도 숨 쉴 공간이 마땅치 않다.

#2015년
인천시는 장고개길 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장고개는 한남정맥 인천구간의 원적산과 호봉산 사이 고개로, 장고개길 도로는 서구 가좌동과 부평구 산곡동을 연결하는 도로다. 1976년 도시계획시설로 일찍이 결정됐지만 군부대로 인해 도로를 개설할 수 없었다. 지금도 제3보급단과 미군기지가 양쪽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인천시는 수백억원 예산을 투입해 600여m 도로를 우선 건설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도로 예정지에는 산곡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비록 하수도라 불리며 대부분 콘크리트로 덮혀 100여m 물길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산곡천은 장고개의 제3보급단에서 발원해 산곡여중과 산곡남중 사이와 부평미군부대 북측을 지나 부평구청 부근에서 본류인 굴포천과 합류하는 분명 하천이다.

#2017년
부평미군부대가 반환 예정이다. 부평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일제 조병창으로 미군부대로 콘크리트 담장과 철조망에 가로막혀 접근할 수조차 없던, 과거이자 미래인 공간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공원 70%, 도로 등 공공시설 30%로 잠정 결정되어 공원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인근의 부평공원, 부영공원과 합하면 20만평에 달하는 대형 도시공원이 생기지만 역사문화와 자연생태가 반영된 부평 랜드마크로서의 청사진은 이제 걸음마단계이다. 최근 토양오염정화작업과정에서 땅굴로 추정되는 지하시설물이 확인되면서 부평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려한 공원조성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2006년
녹색연합은 단국대학교와 공동으로 인천지역 복개하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인천에는 인천광역시장이 관리해야 하는 지방하천이 31개다. 그 중 인천 내륙에만 17개의 지방하천이 있으나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나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굴포천은 중장기 복원계획을 수립해야한다'였다. 굴포천은 인천가족묘지공원 내 칠성약수에서 발원하여 부평공원과 부평미군부대 사이, 부평구청 옆을 지나고 부천과 계양지역의 지류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인천에서 가장 큰 하천이다. 부평에는 굴포천 본류 이외에도 구산천, 동수천, 산곡천, 세월천, 청천천, 목수천 등 지류들이 있어 부평은 가히 물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힌 목마른 도시이다.

#2008년,
부영공원에서 멸종위기야생동물인 맹꽁이의 집단서식이 확인되었다. 토양오염정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확인된 어른 맹꽁이만 500마리가 넘는다. 삼산동 논에는 또 다른 멸종위기야생동물인 금개구리가 살고, 원적산과 만월산에는 도롱뇽과 두꺼비, 반딧불이가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 굴포천 본류와 지류 등 하천 등을 통해 자유롭게 오갔던 이웃생명들로 굴포천이 복원되고 부평미군부대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면 굴포천과 산곡천으로 통해 한남정맥과 부평미군기지터, 한강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도로와 주차장이 중요한 도시기반시설이지만 빗물이 투과되지 못하고 한여름 뜨거운 열복사로 인한 도시 열섬화와 건조화 등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반면 하천은 생태통로이며 도시열섬 저감과 미세먼지 저감 효과 등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환경을 위해서도 하천은 필수이다.

#2050년, 부평은 어떤 모습일까?
봄에는 부평미군부대였던 논에서 써레질하는 할아버지와 어미소의 꽁무니를 송아지가 따르고, 여름에는 아이들이 그 논과 굴포천에서 송사리를 잡는 물총새와 개구리를 낚아채는 백로를 관찰한다. 가을이면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고 텃밭에서는 고구마를 캐고, 둔치에서는 콩을 털고 빠알간 고추을 말린다. 또 겨울에는 논에서 쥐불놀이하고 눈싸움하는 풍경을 그려본다. 미래세대와 이웃생명이 함께 사는 생태도시 부평, 상상이 아닌 충분히 실현가능하다. 이를 위해 부평미군부대 부지이용과 굴포천 복원을 지금 함께 고민하고 계획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