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시인
필자가 아는 헌 책방 주인의 하루일과중 첫번째는 새벽 자전거를 타고 반경 1㎞의 고물상을 순회하는 일이라고 한다. 전 날 이사 가고 오는 집에서 버린 헌책을 돌아보고 골라 사는 재미로 십년이 넘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고물상에 모인 책은 무게로 달아 재생지 공장으로 보내기 위한 끝으로 거치는 과정인데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그 모습이 숭고롭기 까지 하달 것은 없지만 선택된 책은 다시 임자의 손에서 학문을 낳는 책으로서의 생명을 다한다니 그냥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일전 본보의 '미추홀'란에서 '책 버리는 도서관'을 읽고 느끼는 바 컸지만 2013년 도서관, 그것도 석학을 길러낸다는 대학의 도서관에서 버린 책이 67만여권으로 서울 남산 도서관 소장도서의 1.5배가 된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국립도서관이나 초대형의 국회도서관 그리고 전국의 공립도서관과 중·고교 학교도서관을 포함한다면 1년에 버려지는 책은 과연 얼마일까. 추측하건데 광역시 인구에 다달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도서관이 휴먼 라이브러리(사람책 도서관)가 회자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사람이 책이 되고 독자들은 그 사람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을 읽는 방식으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책을 통해 앞서가는 세상과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말이다.

얼마 전 헌 책방에서 구입, 읽은 책이 생각난다. 일본의 서평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인데 '책이 집을 파과한다' 는 공포스러운 챕터로 시작되는 이 책은 목조 주택이 장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내려앉을 위기의 상황을 설명하는 책으로 묘안을 도출, 영양가 없는 부분은 솎아버리고 읽고 참고할 부분만 스크랩하여 여러 책을 한 책으로 제본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어 공감을 불러 낸 바는 있었지만 '책이 집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그러나 '책을 둘 곳 없는 인천지역의 도서관' 실정 앞에서 다소 이해는 가지만 더 실감있는 이야기론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법재판소 건물이 2년내 붕괴우려가 있다는 기사를 읽고 사실로 다가온 이야기로 실감하게 되었다. 5층에 도서관을 만든것도 문제지만 이미 장서의 적정선을 넘었고 93년에 건물을 지으면서 적재가능 하중 750㎏/㎡ 보다 100㎏/㎡이 미달되어 일어나는 문제로 좀 한심하기 그지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다. 책은 다른 물건과 달리 그냥 버리는게 쉽지 않은 것으로 한번 구입한 책은 평생 머리에 이고라도 살고 싶은 게 개인 소장자들의 마음 일 것이다. 한 권, 두 권, 쌓이다보면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 시간 문제이지만 읽지않고 쌓아두는 일은 '삐뚤어 진 욕망'에 불과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넘쳐나는 세상에 버리는게 축복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자신과 인연을 다한 책이라면 새 주인을 만나 재 탄생의 길을 걷게 함이 덕목이 아닐까 한다. 책을 기증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서로가 읽은 책을 교환하여 볼 수 있는 장터를 마련하는 제도도 생각해 봄즉하며 '책 수리함'을 동네마다 설치하는 것도 방법에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송나라 육유(陸游)가 서재를 서소(書巢)라 하여 책둥지로 불렀고 유식(劉式)이 묵장(墨莊)이라고 하여 먹글씨로 이룬 집이라 하였다. 더욱이 유식의 아내는 자식들을 불러놓고 세상을 뜬 남편이 남긴 책을 "배움을 증식시키는 도구로 너희에게 준다"라고 한 실례를 보면 책 속에 묻혀 부지런히 읽고 또 읽어 큰 학자가 되었던 것 처럼 물려주고 나눠주고 서로서로 공유할 때 책의 소임을 다 한 것 아닐까. 2015년 인천은 '책의 수도'라 했다. 버리는 책의 생명을 불어넣고 기증하고 나누고 책끼리 물물교환하는 장터를 기획하여 보는 것도 변별력 있는 행사에 하나 일 수가 있다. 아침 새벽 자전거 길의 헌 책방 주인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책 버리는 도서관의 도서관 다웁지 못한 모습이 선 하다못해 따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