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정체성 찾기] 강옥엽의 인천역사 원류를 찾아서
22>교동의 누정시(樓亭詩)
누정(樓亭)은 누(樓)와 정(亭)이 결합된 단어이다. 누(樓)는 '겹 지붕(<설문해자>, 重屋也)'으로 다소 높게 축조된 건축물이다. 정(亭)은 높다[高]와 대못[丁, 기둥]의 결합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건물로, '쉬다, 정지하다[停]'의 의미처럼 '잠시 정지하여 쉬는 공간'이다.

누(樓)와 정(亭)은 주변을 쉽게 조망할 수 있도록 기둥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누정이 위치하는 공간은 "대개 누정을 짓는 것은 높고 넓은 데 있는 게 아니라 그윽하고 깊숙한 데 있다(안축, <취운정기>, 大抵樓亭之作 不在高曠 則在幽深)"라는 지적처럼 주변의 경관과 조화로운 곳이다.

누정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만큼, 누정 안에 있으면 인공을 초월하여 대자연에 동화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흔히 누정의 기능을 유흥, 수양, 회합, 군사 목적 등으로 나누는 것도 누정이 위치한 곳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교동도의 누정은 총 13개, 그와 관련된 누정시는 12수가 전한다. 13개의 누정 모두 주된 기능은 공무 및 군사 목적이다. 그중에서 누정시와 관련된 것은 동헌 남쪽에 있던 안해루(晏海樓)를 소재로 하는 11수와 읍성 북문의 문루였던 공북루(拱北樓)를 소재로 하는 1수이다.

다음은 1688년 축조된 안해루를 소재로 삼은 한시이다.

統御轅門闢水邊(통어원문벽수변) 통어영 군문은 물가에 열려 있고,
樓高百尺接雲天(누고백척접운천) 백 척 높은 누각은 구름에 닿았구나.
勢成脣齒連江都(세성순치련강도) 순치의 형세로 강도와 이어졌고,
地作咽喉鎭海延(지작인후진해연) 인후의 땅으로 바다를 지키네.
三道摠師專節制(삼도총사전절제) 삼도의 군사를 절제사가 총괄하니,
四方無警絶塵烟(사방무경절진연) 사방엔 경보도 없어 속세가 아닌 듯하네.
書生事業今如此(서생사업금여차) 서생의 사업은 지금 이와 같으니,
文武全才愧昔賢(문무전재괴석현) 문무를 겸비한 예전 현자에 부끄럽구나.

1724년 경기도수군절도사로 교동도에 부임했던 이익한(1659∼?)이 지은 한시이다. 군사 요충지로서의 교동의 위치와 안해루의 기능,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읽을 수 있다. 교동이 군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순치(脣齒)와 인후(咽喉)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는 안해루의 상량문에 기술된 "천지의 빼어난 정기가 모이는 곳에 어찌 누대가 없으리오.…경기도와 충청도로 길이 연결되고, 변경을 지키는 철옹성이요, 연백과 인접하여 서로 지원하니 나라를 지키는 울타리이다(天地精英之所鍾 斯豈無也…畿湖倚而爲重 固圉金湯 延白接而成援 衛國屛翰)."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삼도의 군사를 총괄한다며 안해루의 기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끝으로 현재 무척 평화스러운 모습을 전쟁을 알리는 신호 체계가 전혀 없다며 진술하고 있다.

遠臨滄海上(원림창해상) 멀리 푸른 바다 위를 바라보니,
遊子足風流(유자족풍류) 나그네의 풍류로는 제격이라네.
暫罷蓬瀛夢(잠파봉영몽) 오래지 않아 신선의 꿈에서 깨어나니,
夕陽入畵樓(석양입화루) 저녁노을이 그림 같은 누각으로 들어오네.

1830~1831년 장신(將臣) 이완식(李完植)이 지은 한시이다.

작자는 안해루에서 서쪽 먼 바다를 조망하고 있다. 섬들은 바다와 하늘 사이에 떠있는 듯했다. 태양이 바다 속으로 잠길 무렵 물빛, 하늘빛, 구름빛이 복잡한 색깔을 연출해내며 뒤섞였다. 빛의 명암과 색깔의 농담에 따라 다기한 모습을 보이던 낙조는 태양이 완전히 바다 밑으로 침몰하고 나서야 끝났다.

그리고 작자는 신선의 꿈 같은 데에서 벗어나 자신이 안해루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안해루 또한 신선 꿈의 연장인 듯, 저녁노을의 끄트머리에 의해 그림 같이 보였다.

작자는 안해루에서 경험한 것을 '나그네의 풍류'와 '그림 같은 누각'이라며 유흥상경[遊息]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일한 공간이되 그곳을 매개로 연상해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어떤 쪽은 군사 및 문루의 기능으로, 다른 쪽은 유흥의 기능으로 시화(詩化)하였다.

물론 양쪽이 시화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안해루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