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실장
지금 세계는 '디지털뉴미디어혁명' 중이다. 1990년대 ICT(정보통신기술) 혁명이 시작된 이래, 전세계의 디지털혁명은 그 속도를 가속화해 왔다. 여기에 인터넷과 모바일, SNS(사교적연결망서비스), 모바일이 가세하면서 정보혁명은 '미디어빅뱅'으로 불릴 만큼 급속하게 진전하고 있다. 인간의 감성이 미처 과학기술을 따라잡지 못 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전세계의 디지털뉴미디어혁명을 견인하는 국가는 단연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에 있어서 OECD회원국 가운데 상위에 랭크돼 있으며, 모바일과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시장에서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다소 밀리는 상황이지만, '싸이월드'와 같이 쌍방형 SNS를 처음 개발해 낸 곳도 우리나라였다. 현재도 '카톡'이나 '에어리브'와 같은 SNS 기술로 여전히 세계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계속되는 중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나라의 지난해 가계통신비 지출액(유선, 이동, 인터넷)은 월간 148.39달러로 일본 160.52달러, 미국 153.13달러에 이어 OECD 국가 중 3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특히 이동통신 부문은 한국이 115.5달러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0월 세계 170여개국 정부대표단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4 ITU(전기통신국제기구) 전권회의'에서 이재섭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이 표준화총국장으로 선출되고 7회 연속 이사국으로 진출한 것도 이같은 IT강국 위상에 힘 입어서다.

우리나라 IT강국의 위상은 이미 800여년 전에 예고된 결과였다. 800년 이전, 고려는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면서 '정보와 소통의 1차대혁명'을 일으킨다. 고려는 1200년대 <상정예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과 같은 금속활자를 이용한 책을 발간하면서 출판인쇄강국의 면모를 과시한다. 이 유물들은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무려 78년에서 221년이나 앞선 것들로, <상정예문>과 <증도가>는 인천 강화도에서, <직지심체요절>은 청주에서 각각 나온 보물들이다.
15년 전인 2000년. '라이프',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의 유수언론인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류 최고의 발명으로 꼽은 것이 '금속활자'였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술이 지식과 정보의 대량전달을 가능하게 해,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 인류문화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인류의 문화발전을 촉진한 사건과 발명의 기본이 바로 금속활자라고 본 것이다. 수 세기가 지난 뒤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중흥시킨 땅에서 다시 'IT의 꽃'이 피어났다. '디지털뉴미디어혁명'과 '금속활자의 발명'이 하나의 역사적 줄기로 맞닿아 있으며 인천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2015년 세계책의수도'이고 800년 전, '금속활자'를 중흥시킨 본고장이라는 사실은 기막힌 필연이다.
서구의 근대문명을 꽃피워낸 3가지가 '인쇄술', '화약', '프로테스탄티즘'이라고 볼 때 서구 근대문명의 3분의2는 대한민국(인쇄술)과 중국(화약)이 영향을 끼친 셈이 된다. 바야흐로 21세기는 대한민국의 시대, 인천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 한다면, 기회가 그저 기회로 그칠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고려의 금속활자보다 더 잘 알려지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싸이월드를 능가했던 것처럼 말이다. '세계책의수도'란 의미는 단순히 인천 혹은 대한민국에 머물지 않는 개념이다. 금속활자가 전세계 문명에 영향을 끼쳤듯이, 온 인류의 출판문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문명을 한발 더 내딛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