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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 소속의 영국 상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가 몽금포 앞바다에 처음 나타나 통상을 청해온 해가 1832년. 그로부터 44년이 지나 이른바 병자수호조약이 맺어지고 통상장정(通商章程)이 체결되어 인천과 부산, 원산이 개항되기까지 조선은 요지부동의 쇄국양이(鎖國壤夷) 국가였다. 하지만 숱한 우여곡절 끝에 쇄국이 개항으로 전환되고 조선경제가 세계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편입되면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조선이 변화하는 계기를 맞이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이 반드시 외세의 무력적인 포함외교(砲艦外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진작부터 천주교와 신문물을 받아들였던 서학도(西學徒)와 북학론자(北學論者)들을 중심으로 개항의 내재적 계기는 작동하고 있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창해온 실학의 대가 연암 박지원 선생이나, 북학자 초정 박제가 선생, 실학의 집대성자로 일컬어지는 다산 정약용 선생 등이 모두 선진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개항의 내재적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진행되어온 우리 역사가, 외세에 의해 자생적인 근대자본주의 맹아(萌芽)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짓밟힌 결과로 귀결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변화의 중요한 계기를 형성했던 개항이 전적으로 외래적 요인만이 아닌 내재적 요인에 의해서 가능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렇게 개항된 3항 중 수도 한성부(漢城府)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탓에 각종 근대문물이 집중됐던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이 나라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적인 공항과 항만을 통해 대한민국의 게이트웨이로 또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성장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인천은 우리 경제의 위상을 대변할만한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가 로테르담 항만과 스키폴 공항을 통해 유럽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 초일류 물류국가로서 명성을 구가하듯이,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우리에게 인천공항이나 인천항 같은 인프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당초 인천을 對중국 물류 및 경제성장 거점으로 육성하고자 2020년까지 4조5000억원을 들여 컨테이너 부두 23선석 등 30개 선석을 개발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물동량 변화 등을 이유로 지금은 2조5000억원을 들여 2000∼4000TEU급 컨테이너 부두 12선석을 개발하는 계획으로 축소됐고, 2011년 개장하려던 당초 계획도 2013년으로 그리고 다시 2015년으로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그런가하면 4조 2천억원이 투입될 인천공항 3단계 확장사업 또한 당초 착공계획이 2011년에서 2013년으로, 완공목표일자도 2015년에서 2017년으로 각각 연기된 바 있다. 대규모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무엇보다 재정운용의 합리성과 투자효율성의 극대화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적기투자와 선제적 투자다. 예를 들어 인천신항 증심준설 같은 경우는 날로 가속화하고 있는 선박대형화 추세에 맞춰 반드시 필요했던 투자다.
인천의 지리적 위치와 물류인프라가 집중된 조건적 특성은, 중국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동북 3성의 물동량을 인천에서 환적해 선박과 항공을 통해 전세계로 유통하는 'Sea & Air' 물류인프라의 적지로 만들고 있다.
중국 동부연안을 따라 천진항, 대련항, 청도항, 상해양산항, 닝보항 같은 대형 경쟁항만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인천이 갖는 지리적 잇점은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인천항은 국책항만인 광양항보다 처리 물동량에서 앞서 있기도 하다. 여기에 향후에도 한중FTA 등 중국과의 교역확대에 따른 항만수요의 증가는 충분히 예견되는 바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꼽히는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 교수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도 경기부양과 미래를 대비한 강력한 수단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환경, 기간산업 투자와 더불어 항만 등 물류인프라를 제시하고 있다. 130여년전, 실학파의 선각자적 혜안(慧眼)에도 불구하고 쇄국으로 일관했던 조선이 외세의 압박에 못이겨 개항이 강제되면서 벌어졌던 아픈 역사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역사의 우행(愚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신항시대를 맞는 2015년은, 이 나라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던 130년전의 개항처럼, 우리 경제의 미래역사를 다시 밝혀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신항 원년, 대한민국의 게이트웨이에서 동아시아의 허브로 성장하고 있는 인천의 미래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