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홍 인천대 교수
온갖 거짓과 불신이 난무했던 슬픈 한해가 저물어 간다. 특히 갑오(甲午)년 올 한해, 사슴이 말로 둔갑하고 말이 사슴취급을 받으며, 올해의 상징이었던 말(馬)이 수난을 겪었던 한 해였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지록위마'란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으로,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가 죽은 후 권력을 잡은 환관 '조고'가 자신이 추대한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하면서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였다는데서 유래하는 말이다.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와 함께, 진실을 호도하고 억지를 부려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사자성어이다. 수많은 억울한 사슴과 말들로 가득한 올 한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2013년부터 이어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에 대해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지록위마'로 시작하여, 300여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명백한 국가의 위기관리 실패임에도 단순한 교통사고에 비유되는 희대의 '위록지마'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50조원이 넘는 부채는 남겼지만 실패한 자원외교는 아니라는 현 정권 경제수장의 허탈한 '위록지마'는 박근혜정권이 지난 4자방 MB정권과 일란성 쌍생아임을 자인하고 있다.

청와대의 십상시 문건은 찌라시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검찰은 전방위 수사에 나섰고, 해당 경찰은 대통령기록물 위반으로 구속되거나 자살하게 한 찌라시의 '위록지마'는 여전히 수많은 추측과 의혹을 생산하고 있다.

연말에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정권수호로 해석해 버린 헌법재판소의 '위록지마'는 화룡정점이었다. 1948년 제헌헌법과 함께 만들어진 헌법재판소의 역사는 독재와 민주항쟁의 반복 과정에서 그 명멸을 거듭하다가 1987년 민주항쟁과 함께 재탄생하였다.
하지만 이후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의 독립적 사법기관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권력기구로의 변신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지난 12월 19일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직위박탈이라는 법적 근거를 넘어서는 그야말로 창조적 판결 주문을 유서로 남기면서, 사법적 자살로서 그 영욕의 역할을 다하였다.
올 한해 무너져 내리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가슴을 매만지고 반성해야 할 집권여당의 대변인은 세태를 분석한 교수들의 진정어린 사자성어마저도 '지록위마'의 지(指), 즉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이 야당이라는 참담한 논평을 내어놓고 있다. 하긴 진돗개가 청와대의 실세가 되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도대체 이들의 후한무치와 당당함은 그 끝이 어디인지?
'지록위마'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환관 '조고'와 향락만을 즐겼던 무능한 황제 '호해'의 모습에서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이 시점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할 야당이 그 집권의지와 능력마저 상실한 채 끝없이 추락하고 있음에 우리의 겨울은 더욱 추워진다.
거짓이 참을 지배하고 사악함이 득세한 올 한해, 안타깝고 억울한 이별이 유난히 많았던 한해, 그 끝자락에서 결국 믿을 것은 우리 자신뿐이라는 곳을 가장 단순한 진실을 다시 만나게 된다.
부패한 집권층과 무능한 야권을 탓하기에 앞서 이런 거짓의 세상에 나 자신은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스스로에 대한 '지록위마'의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연말과 함께 숙고해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새해에는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는 한해를 맞이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