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인천시궁도협회장·수필가
영화 '국제시장'은 70대 가장이 6·25전쟁 피난 중에 실수로 여동생을 잃고 그 동생을 찾기 위해 남아야 했던 부친과도 헤어진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파독 광부와 월남전 참전까지 겪었던 한평생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자식으로 자라며 또한 자식을 키워오며 부모는 평생 자식의 노예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했다. 어떤 친구가 품안의 자식을 출가시키면 한시름 놓을 줄 알았더니 손주를 돌봐야 하고 심지어는 갈라선 자녀 뒷바라지(애프터서비스)까지 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이 술자리에서 속 썩는 부모들의 안주거리로 등장하나보다. 그러나 주인공 덕수는 흥남철수 때 헤어지며 '아버지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고, 가장은 집안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해양대학 합격증과 미래 선장의 꿈을 포기하고 파독 광부의 길을 떠났다. 생명을 담보로 떠난 파독 광부는 그래도 그 시대의 영웅이었다. 우리 또래의 형제자매들은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동생들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공장 직공으로 취직해야 했다.

주인공은 가족들의 생존터였고 꿈과 땀과 눈물로 키워 온 고모의 양키시장 내 '꽃분이네'가게를 인수하기 위해 월남전에 건설요원으로 파견을 자원한다. 이것은 보리 고개를 넘기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고속도로와 대규모 공장 건설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 시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
그 시절 그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 덕분에 우리는 미군 지프를 따라다니며 "헬로! 기브미 초콜릿!"을 외치지 않아도 되었고 경제 선진국의 대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공은 돈을 벌어 귀국해 가게 주인의 꿈을 이루었지만 총상으로 한쪽 다리를 의족으로 바꾼 장애인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마련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점포였기에 팔지 않으면 강제 수용하겠다는 재개발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주인공의 심정을 영화 말미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 기적을 이뤄낸 후 어느 정도 의식주가 해결되자 주인공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 위해 방송국에 이산가족 해후 신청을 한다.
당시 영화 '남과 북'의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국민 애창곡이 되었고 온 나라는 재회의 기쁨과 안타까움으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주인공은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과 재회를 하지만 100세를 넘긴 아버지는 끝내 만나지 못한 채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떠안게 되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주인공은 손녀딸이 불러준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를 들은 후 조용히 옆방으로 건너간다.
그는 헤어질 때 아버지가 어깨에 걸쳐준 잠뱅이를 장롱에서 꺼내 가슴에 안고 '가장이 되어 가족을 지키라'는 약속을 지켰다며, 그러나 너무 힘들었고 지금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흐느 낀다.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성공한 자식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소통이 안 된다고 불평하며 자신과 제자식의 행복만을 추구한다. 하지만 황혼에 이른 부모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바쳤던 추억에 만족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