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순두부는 내가 풀 테니까 이 헝겊이나 깔아 줘.』

 성복순은 모두부상자에 헝겊을 깔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솥가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윗물을 다 걷어낸 순두부를 바가지로 조금 떠내 맛을 보았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그런지, 혀끝에 닿는 순두부 맛이 고소했다. 간도 잘 잡힌 것 같았다. 그녀는 순두부 솥가마 위에 걸쳐놓은 바가지로 순두부를 세 바가지씩 모두부상자로 퍼담았다.

 그러자 모두부상자에 헝겊을 깔고 있던 김옥남 소조원이 다가와 한 상자씩 들고 갔다. 그녀는 들고 간 모두부상자를 걸침대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덮었다. 뚜껑은 장방형의 모두부상자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김옥남 소조원은 순두부가 품고 있는 물을 빼기 위해 뚜껑을 덮은 상자마다 묵직한 눌림돌을 올려놓았다. 상자 뚜껑이 밑으로 내려앉으면서 모두부상자 밑으로 뚫어 놓은 구멍으로 간수 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성복순은 솥가마 속의 순두부를 다 퍼내 모두부상자 속에 앉히고 난 뒤, 자신을 도와주던 소조원들과 같이 작업대 옆에 모여 앉아 뜨끈뜨끈한 모두부에 김치를 걸쳐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때 석정달 아바이가 다가와 좀 보자고 했다. 성복순은 석정달 아바이를 따라 사무실로 올라갔다.

 석정달 아바이는 사무실로 올라와 담배를 한 대 붙여 물었다. 그리고는 군 인민병원에 입원해 있던 리민영 여맹위원장이 조금 전에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면서 빨리 병원으로 달려가 김유동 부비서를 도와 주라고 했다.

 성복순은 석정달 아바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침에 만난 김유동 부비서로부터 「네 언니가 금방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떠올라 얼른 가름옷으로 갈아입고 가내작업반을 나왔다. 군 인민병원이 있는 읍내를 향해 눈밭을 혼자서 타박타박 걷는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는 친정어머니가 재혼을 권유하고, 김유동 부비서가 청혼을 해 와도 그녀는 여맹위원장이 두 눈 뜨고 살아 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재혼만큼은 극구 피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핑계를 대면서 기댈 언덕마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인이 아버지! 우리 영인이 배 굶기지 않고 잘 키우기 위해서는 유동 오빠와 재혼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데 괜찮갔습네까? 길찮으면 살기가 힘들어서 내 혼자 힘으로는 우리 영인이를 대학까지 공부시킬 수가 없습네다. 어카면 좋습네까?

 남편의 얼굴을 그리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흘렀다. 서럽고 억울했던 지난 시절의 슬픔 때문일까? 아니면 살아도 살아도 끝없이 밀려오는 배고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그녀는 배고픔의 고통과 두려움이 없는 저승으로 달려가 김영달 상사와 천년만년 살고 싶은 정신적인 환각에 빠지면서 미친 듯이 눈길을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