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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청백리에서 배우는 청렴
내 생각엔-청백리에서 배우는 청렴
  • 권용국
  • 승인 2014.12.22 18:47
  • 수정 2014.12.22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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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승 김포소방서장
청백리를 선발하고 표창하는 일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됐다. 한나라 문제 12년(168년)에 염리(廉吏)를 선발해 표창하고 곡식과 비단으로 상을 준 것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시대부터 청백리를 표창한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총 218명의 청백리가 선발됐다.

청백리란 깨끗한 공직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로 조선시대에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 돼 청백리안(淸白吏案)에 이름이 올랐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청백리는 죽은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염근리(廉謹吏) 혹은 염리라고 불렸으며 깨끗하고 유능한 관리를 뜻한다. 전남 장성에 있는 백비와 관련된 조선 3대 청백리 중 한분인 아곡(莪谷) 박수량(1491∼1554) 선생이란 분이 있다. 정혜공 아곡 박수량 선생은 명종 때의 이름난 신하로 중종 9년(1514년) 과거 급제 후 호조·예조·형조·공조판서(장관, 정2품), 한성부 판윤(서울시장, 정2품), 의정부 좌·우참사(정2품), 함경도·전라도 관찰사(종2품) 등의 공직에 올랐다. 선생의 정혜(貞惠)라는 시호(諡號, 돌아가신 분에게 임금이 내려주는 호)는 '청렴결백하였다는 청백수절(淸白守節)에서 정(貞)'을,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이 친부모처럼 따랐다'라는 애민호여(愛民好與)에서 혜(惠)를 합하여 지었으며, 시호만 보더라도 청백리(淸白吏, 청렴결백한 관리)에 선정된 선생의 공직 생활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사후에도 청빈했던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묘를 크게 하지 말고 비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그의 죽음에 명종은 "모범으로 삼을 청백리가 떠났다"며 서해바다 좋은 암석을 골라 하사하였으며, "선생의 청백함을 새삼스럽게 비에 새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함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 하여 글씨를 새기지 않고 그대로 세웠다고 하여 지금의 백비(白碑)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국무총리 소속 부패척결추진단이 채 두 달도 아니 되는 기간 동안 검찰 경찰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안전·보조금·취업'등 3대 우선척결 비리를 집중 조사한 결과 448건의 비리와 관련자 1732명을 적발했다는 뉴스가 각종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올 한해 전 국민을 슬픔에 빠트리고 희생자 가족에게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힌 세월호 참사 조사과정에서 나타난 해피아를 시작으로 대다수 정부 부처나 기관의 이름에 마피아를 붙여 만든 관피아 신조어가 난무하고 있다.
불과 몇백년 전의 일이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곡 선생의 삶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38년이나 되는 오랜 공직생활동안 백성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맡은바 소임을 다하며 평생을 검소하게 살다간 선생의 얼은 결코 퇴색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그 감동이 현재와 미래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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