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실장
지난 90년 초. 그러니까 지금의 인천 서구 백석동이 행정구역상 김포에 속해 있던 시절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금의 '백석고가교' 밑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낡은 텐트 옆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시위를 벌이는 중이었다. '몸빼' 옷을 입은 할머니, 잔주름으로 뒤덮인 시커먼 얼굴의 농군들. 노숙자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은 다름아닌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었다.

"아, 촌사람들이 데모가 뭔지, 항의집회가 뭔지 알기나 합니까? 그 땐 정말 참고 참다가 도저히 못 살겠어서 (집회에)나온 것이었어요" 당시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한 주민은 이렇게 회상했다.
'수도권매립지'에 쓰레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평온하던 농촌은 거대한 쓰레기더미로 변해갔다. 파리, 모기가 새카맣게 들끓었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온 동네를 뒤덮었다. 청소차량이 오가며 흘리는 오물과 먼지로 거리와 대기는 심각하게 얼룩져 가는 중이었다. 쓰레기를 묻은 자리에선 종아리까지 침출수가 차올랐고, 밤새 "탕! 탕!"하며 쓰레기를 떨어내는 청소차의 소음으로 주민들은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로부터 22년. 수도권매립지는 마침내 쓰레기더미에서 '꽃'을 피워냈다. 매년 '국화축제'를 개최해 수백만 명이 찾는 것은 물론, 골프장과 수영장·승마장 같은 여가시설까지 들어섰다. 그런데, 주민들이 겨우 안정을 되찾을만 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2016년 매립종료'를 앞두고 서울시와 경기도가 '매립연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쓰레기가 찰 만큼 차지 않았다'는 게 한 명분이다. '주민지원협의체'를 중심으로, 수도권매립지 주민들은 지금, 긴장과 분노의 눈초리로 지자체의 움직임을 주시 중이다. 2016년까지만 견디면 된다며 참고 살아왔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가 2016년 매립을 종료한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주민들은 진실성을 의심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매립 종료가 우선이다. 다음이 '분리수거'의 부재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이다. 수도권매립지엔 현재 분해시기가 2개월부터 1000년에 이르는 폐기물들이 마구 뒤섞여 들어오고 있다. 쓰레기가 녹아 없어지는 시간은 폐기물마다 조금씩 다른데 1회용기저귀는 100년, 플라스틱용기는 500년 이상, 유리조각은 1000년 이상이다. 배출자들은 그러나 이런 것들을 분리하지 않은 채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버리는 게 현실이다. 물론 감시원들이 쓰레기반입차량을 대상으로 검사를 해 적발될 경우 벌점을 주거나 반출을 시키고는 있다. 그렇지만 육안으로 샘플만을 채취해 검사하는 것이라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침출수를 차단하고 가스를 포집하는 등 위생매립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천재지변이나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환경오염의 진앙지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잠재하고 있다. 인천·경기·서울 등 3개 시도의 크고 작은 지자체들의 홍보와 계도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환경보존에 대한 인식과 철학 없이 매립종료에 따른 대체부지 마련의 어려움과 '쓰레기 대란'만 호소하고 있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 차 밖으로 내 던지는 담배꽁초, 하수구에 버리는 오물은 먼지와 수돗물, 야채와 과일에 섞여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집 안은 깨끗하지만, 집 밖이 온통 더럽다면 결국 내 집 안까지 오염되리라는 건 자명한 이치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시행하도록 강제하는 법·제도적 근거 마련과 '윤리의식'의 선행을 고민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