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17>이규상의 죽지사 ④ - 지방민에 대한 애정
 1765년 이규상이 인천 일대를 유람하고 <인주요> 9편과 <속인주요> 9편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지방민에 대한 애정을 소재로 삼은 한시가 전한다.
 
 民瘠知緣士夫多(민척지연사부다) 백성이 가난한 거 아는 선비 많지만
 遊衣遊食一生過(유의유식일생과) 유의유식하며 일생을 보내지
 縱然義理須君輩(종연의리수군배) 그러나 의리가 그대들에게만 있나
 得失相參其柰何(득실상참기내하) 함께 어울려 득실을 따지면 어찌 하겠는가(<속인주요> 9연)
 
 작자가 지방의 현실을 그리면서 지방민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위의 <속인주요> 9연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방민의 고단한 삶의 실상을 파악한 작자는 그들의 고된 노동과 가난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의나 리를 논하더라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고단한 삶을 사는 지방민과 대비되는 선비들은 입으로는 의와 리를 논하지만 실상은 유의유식하며 인생을 보내는 자들이기에 지방민에 대한 작자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즉 치열하게 살아가는 지방민들이야말로 선비들보다 의(義)와 리(理)를 지닐 수 있다며 그들에게 경계의 말을 던진 셈이다. 이는 염부에 대해 '물에 기댄 인생(寄水生涯)'이지만 '모든 백성들이 일반 구해 먹는(五行民食一般需)' 거라며 그들에 대해 '비웃지 마(君莫笑)'라는 데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의(義)와 리(理)를 운운하는 선비들의 풍류공간을 소재로 하는 다음의 한시에서 이런 면을 확인할 수 있다.
 
 花郞艶服抱稽琴(화랑염복포계금) 화랭이 고운 옷 차려 입고 계금을 뜯고
 巫女雲鬢亞畵簪(무녀운빈아화잠) 무당은 풍성한 머리털에 그림비녀 꽂았네
 堂上歌酬堂下樂(당상가수당하악) 마루 위에서 노래 부르고 마루 아래에서 즐거워하며
 暗中相授是何心(암중상수시하심) 어둠 속에서 어떤 마음 서로 주는가(<속인주요> 8연)

 8연에 등장하는 화랭이와 무당은 가무에 능한 자들이다. 계금을 뜯는 화랭이와 그림비녀 꽂은 무당, 그리고 마루의 위와 아래에 진열해 놓은 잔칫상으로 보아 양반집의 풍류이다. 술과 안주, 음악이 소비되는 공간이니만큼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면 그만일 텐데, 지방민들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던 작자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풍류공간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혹은 기녀들에게 던지는 말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어둠 속에서 어떤 마음 서로 주는가(暗中相授是何心)'라는 부분에서 암중(暗中)을 '은연중'으로 이해해도 그것이 긍정적인 대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조선후기 죽지사에서 기생들이 등장하는 경우 대체로 그들의 삶과 애환이 직간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다.
 
 官人誰願作書房(관인수원작서방) 누가 벼슬아치 서방 얻기 바랄까
 知面知名也不祥(지면지명야불상) 얼굴 이름 알려져야 좋을 거 없네
 前年阿姉選醫女(전년아자선의녀) 작년에 언니가 의녀로 뽑혀
 啼別孃孃上洛陽(제별양양상낙양) 울면서 어머니 이별하고 서울로 갔네(<응천교방죽지사> 7연)
 
 (…중략…)
 縱道花叢身分好(종도화총신분호) 꽃떨기들 신분 좋다고 말하지만
 公門三日一年如(공문삼일일년여) 공문에서의 삼 일은 일 년과 같네(<평양죽지사> 19연)
 
 기생이 태생적으로 해어화(解語花)이기에, 그들이 온전히 기능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꽃일 때에만 가능하다. 풍류공간의 '어둠 속에서 어떤 마음 서로 주는가(暗中相授是何心)'는 꽃으로 기능하기를 바라는 수작(酬酌)이었기에 그것이 작자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다. 이는 어로활동을 직접 관찰하거나 염부에 대해 긍정하거나, 또는 무속에 기대는 지방민을 이해하고 있던 작자였기에 '어둠 속에서 어떤 마음'이 긍정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인주요>와 <속인주요>를 통해 보건대, 작자 이규상에게 <인주요>의 소재들은 호기심과 관찰의 대상이었지만 <속인주요>에 이르러서는 관찰을 넘어 지방민들의 고단한 삶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는 계기였던 것이다. 예컨대 <인주요>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무속과 지방민에 대한 애정이 <속인주요>에서 각각 3개와 1개로 나타나기에 그렇다. 이를 통해 방문자의 시선(<인주요>)에서 지방민들의 삶의 본질에 공감하는 시선(<속인주요>)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