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삶의 충전이다. 또한 내일을 위한 축적이다. 그러므로 축제는 소비와 낭비가 아니라 진취적이고 생산적이다. 축제로 성공한 곳은 주민들이 활성화 되어 있다. 축제는 겉으로는 낭비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축적된 힘의 원천이다.

 지금은 농촌의 과소화로 도시는 과대화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급속히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공항이 들어서고 서해시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축제마당은 아직 시민의 일체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때 이웃나라 일본의 축제를 관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난 8월20일부터 25일까지 일본의 이시가와현(石川懸)의 초청으로 필자를 비롯한 지춘상(전남대 명예교수), 이상일(성균관대 명예교수), 윤광봉(히로시마대 교수) 등 4명의 학자가 한일기리코 축제합동조사의 일환으로 방문했었다. 일본은 마쯔리(축제)의 나라라고 할만큼 축제가 많다. 일년 내 마쯔리 행사가 없는 날이 거의 없다. 그러나 집중되어 있는 계절은 여름이고 그 중에서도 소위 그들이 말하는 오본(8월15일)계절을 전후하여 마쯔리가 성행한다.

 노도반도(怒濤半島)는 이시가와현(石川懸)에 속하는 동해쪽으로 뻗은 반도로서 이곳은 기리코라는 축제로 유명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년소녀들은 작은 기리코, 청년들은 다소 큰 기리코를, 그리고 장년들은 아주 큰 기리코를 메고 제장으로 향한다. 높이 3m에서 10m의 장방형으로 된 안은 등을 환하게 비추고 겉에는 축복의 글(賀訶)이 씌워져있다. 반별로 1개내지 2개씩 기리코를 만들어 한 동네에 10개에서 20개가 넘는다.

 저녁 5시경 행렬을 이루고 기리코를 둘러 메고 가는데 이 때는 북을 치며 피리를 불어 행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그리하여 동(일본에서는 무라(村)단위)에 있는 신사(神社)앞 광장으로 모인다. 이때 모인 군중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무렵 신사에서는 제의가 베풀어지는데 신주(祭官)가 신대를 흔들어 신이 내렸음을 보여준다. 그리고나서 신명나게 기리코를 메고 바닷가로 행렬을 지어간다.

 저녁 8시쯤 이 때 관광객은 해변가에 즐비해 서서 기리코가 당도하기를 기다린다. 바닷가에서는 모닥불을 삼삼오오 피워놓고 한가운데는 높이 약 20m정도되는 기둥 횃불을 세우고 넘어지지 않게 밧줄 세가닥이 땅에 고정되어 있다. 기리코가 모두 당도하면 불을 지핀다. 불은 삽시간에 타올라간다. 이윽고 꼭대기까지 타오른다. 꼭대기는 볼록하게 짚단이 묶여 있었으며 세개의 대나무에 신의 상징인 신칼이 꽂혀 있다. 마침내 횃불은 넘어진다. 한쪽에서는 임시로 만든 무대위에서 팀별로 북을 치는 경연을 행한다.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들은 2시간동안 정신을 잃고 환성을 울리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다.

 이상이 기리코축제의 대강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약 삼일간을 이들은 축제를 위해 소비하고 있을까. 첫째는 일년간의 벽사진경을 하고 둘째는 풍요를 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축제를 위해서 헌금을 할 뿐만 아니라 상가는 철시하고 축제마당에 임시로 이찌(시장)가 가설된다. 보기에는 분명히 낭비임에 틀림없지만 축제의 기본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에 기여한다고 본다. 일본의 마쯔리(축제)는 그런 점에서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릉 단오제를 위해서 한주일전 대관령 국사 서낭의 상징인 신목을 베는 의식을 대관령에서 행한다. 시종 경건하고 엄숙하며 흥겹다. 신장부가 산에서 신이 내린 나무를 베어 오면 사람들은 다투어 홍색, 청색의 예단을 걸며 소원성취를 빈다. 「국사성황신위」라고 쓴 위패와 수호신의 상징인 신목을 들고 산을 내려오면 그 뒤에 농악이 뒤따르고 민중이 뒤따른다. 이를테면 수호신의 행차인 것이다. 그리하여 산에서 내려온 수호신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여성황당에 모시는데 이는 합방의 의미가 있다. 음력 5월3일 저녁 무당과 제관들이 여성황당에 올라가 위패와 신목을 모셔 내온다. 이 때 시가행진이 벌어지는데 위패와 신목을 앞세우고 농악을 울리며 그 뒤로는 모두 손에 제등을 들고 뒤따른다. 시가행진이 끝나면 가을단오제가 개최되는 남대천변에 가설된 굿청으로 모셔진다. 약 일주일간 단오제 축제가 행해진다.

 노도반도(能登半島)의 기리코축제와 비교해 볼 때, 축제구조상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대관령에서 신목을 베어오는 것은 기리코축제가 등(燈)의 구실을 하지만 실은 신간(神竿)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리코정상에 신의 상징인 사가키(?)를 꽂고 있는 것을 보아도 신간의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등(燈)의 기능이 확대된 것은 초기에 단순한 제의행사였던 것이 축제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신간과 등이 복합되어 크게 변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리코가 광장에 모였을 때 높은 장대 위에 횃불에 불을 지핌으로써 흥을 돋우어 군중으로 하여금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한국에는 달집태우기라 하여 옛날에는 각 촌마다 정월 보름날 논이나 광장에다 높이 약 7~12m되는 원추형의 달집을 만들어 생솔로 둘레를 입혀 불을 지름으로서 자기의 소원과 풍요를 비는 일종의 주술행위가 있는데 일본의 기리코축제에 등장하는 크고 높은 횃불도 이 달집과 같은 기능이다.

 다만 한가지 다른 것은 기리코축제에 접합되어 기리코축제의 일환으로 행사를 한다는 점이다. 원래는 별개의 제의였던 것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축제(마쯔리)라는 것으로 발전할 때 크고 작은 제의들이 축제라는 이름으로 합쳐져 오늘날의 폭발적인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어떤 점으로 보면 한국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는 마당에 옛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우리도 제의나 신사(神事)로부터 축제라는 기능의 일대 변혁을 할 필요가 있다.

 축제의 목적은 첫째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강릉단오제가 성공한 것은 믿든 믿지 않든 대관령 산신을 구심점으로 삼았다. 인천이 낳은 영웅이나 장군이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인천시민이 언제까지나 관의 도움을 받아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겠는가. 기업가들과 시민들이 합세하여 시민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다양한 이벤트의 활용이다. 인천축제에 참가하러 오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추억에 남는 인상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보는 축제에서 참가하는 축제가 되도록 이벤트가 구성되어야 한다.

 결국은 축제란 그 지역 시민들의 삶의 질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