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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경제학자 아담 스미스 이래로 최적의 자원배분 메커니즘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장의 기능과 효율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기 시작한 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가 태동하던 50년대였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 바토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에 기인하여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저해되는 '시장의 실패'를 지적하면서 독과점이나 공공재의 부족 등으로 공공의 이익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같은 시장실패를 보완하여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의도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정부의 실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도 역시 자본주의 황금기를 본격적으로 구가하던 70년대였다. 이번에는 권력과 특혜, 분배의 불공정성 등이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거듭되는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를 보완하여 오늘날 통용되는 거버넌스의 개념은 이런 점에서 공공성의 확대와 공정성의 제고를 의도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랭커스터 대학의 사회학 교수 제솝(Bob Jessop)에 따르면, 거버넌스는 상호의존적인 행위자들의 자기조직화를 반영하는 개념이며,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불가피한 충돌이나 모순적인 상황을 조정하고 상호간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자원을 배분하거나 관계를 지속하는 데 기반이 된다. 이러한 거버넌스는 생활세계와 정치나 경제, 법률 같은 특정의 사회체계 사이에서 주어지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거버넌스 과정에 관여하는 이해관계자 간의 균형적인 권력관계나 평등적인 분배를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공존을 위한 방안을 효율적으로 창출해내는 특성을 갖는다. 거버넌스는 집합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뿐만아니라 가치적 조합의 관점에서 또한 규범적인 중요성을 가지며, 그런 점에서는 행위자들 간의 복잡하고 불안정한 환경조건의 극복, 책임의 귀속, 공조 가능성 등에 대한 상호작용을 요건으로 '중도', '협력', '협상', '보완', '조절', '소통'에 기반한 '성찰적' 자기조직화를 실질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결코 말처럼 쉬운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거버넌스의 자기조직화가 성찰적이지 않거나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전략적으로 선택적인 자기속성에만 충실하고자 할 때, 거버넌스 메카니즘은 시장이나 위계적 권력을 대체하여 위기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경제학에서의 '시장', 정치학에서의 '주권국가', 사회학에서의 '시민사회' 등과 같은 전통적인 편제에 따른 분류를 넘어 '거버넌스'라고 하는 사회과학적 패러다임이 오히려 성찰적인 철학적 베이스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만 비추어 봐도 거버넌스는 다분히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축적과 정치적 동원, 시장의 무질서와 국가폭력, 공공재의 부족이나 권력과 특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고 공정성과 공공성, 사회적 공존을 위한, '현재로서 주어진' 최선의 방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치행정 시대의 거버넌스는 제도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완성돼야 한다. '중도', '협력', '협상', '보완', '조절', '소통' 같은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