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정말 지지리도 여자 복도 없어….

 꺼벙한 김유동 부비서의 얼굴을 생각하며 원자재 창고 앞에 도착하니까 두부생산소조 소조원들이 손수레를 끌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성복순은 소조원들과 같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 두부를 만들 콩과 간수를 수령했다.

 작업장으로 되돌아와 소조원들한테 일을 시켜놓고 불때기(가열)가 끝난 솥가마 앞으로 다가가 간수를 치는데 김유동 부비서가 예고도 없이 친정 집에 찾아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날 밤이 생각났다.

 그날 밤, 노모 엄씨는 남의 눈이 무섭다며 김유동 부비서와 하루라도 빨리 재혼할 것을 권유했다. 성복순은 참으로 난감했다. 리민영여맹위원장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생뚱맞게 무슨 소리냐며 노모의 권유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엄씨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왜 김유동 부비서를 집으로 불러들여 합방하느냐고 따졌다.

 그때 성복순은 자신이 6개월 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66호 노동교양소로 수감되었을 때 김유동 부비서가 자기 뱃속의 아이를 죽이지 않고 낳게 해주었으며, 배불뚝이 임산부를 싫은 내색 한번 보이지 않고 끝까지 돌봐준 그 때의 은혜를 생각하면 김유동 부비서를 위해 자신이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노모의 따가운 질책에도 늘 당당하게 버티어 나갔다. 그러나 사경을 헤매고 있는 리민영 여맹위원장이 죽고 난 뒤 어머니가 또 유동 오빠와 재혼하라고 하면 그때는 뭐라고 대꾸할까?

 솥가마에다 간수를 다 친 뒤, 긴 나무주걱으로 솥가마 속의 익힌 두유를 천천히 젓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처지면서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때는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을 것 같았다.

 간수를 쳐서 잘 저어 두었던 두유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두유 속의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점차 순두부로 변해갔다. 성복순은 순두부 솥가마 위에 뿌옇게 떠오른 윗물을 바가지로 걷어냈다.

 『이 솥가마 속의 순두부는 이자(이제) 모두부상자 속으로 옮겨 물을 빼야갔디요?』

 뜨끈뜨끈한 김이 솟아오르는 콩물을 무명주머니에 퍼담아 비지를 걸러내고 있던 김옥남 소조원이 다가와 물었다. 성복순은 순두부 솥가마 앞에서 윗물을 걷어내다 바가지를 솥가마 위에 걸쳐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래. 이 솥가마 순두부는 이자 물을 빼도 되겠다. 저쪽에 있는 무두부상자들을 이쪽으로 좀 옮겨 줘.』

 김옥남 소조원이 땀을 흘리며 수조 옆에 쌓여있는 모두부상자들을 순두부 솥가마 앞으로 옮겼다. 성복순은 플라스틱 함지에다 맑은 물을 퍼담아 모두부상자에 깔 헝겊부터 깨끗하게 빨았다.

 『제가 퍼담을까요?』

 모두부상자를 다 옮긴 김옥남 소조원이 물었다. 성복순은 깨끗하게 빨아놓은 헝겊을 한 장 한 장 펴서 나무상자 안쪽에 깔면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