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인천에서 시작한 최초의 역사-15-전화
▲ 전화 개통 초기의 상투 튼 남자 교환수
▲ 제물포 전화소(電話所)의 위치도
'전화'가 '가보' 제1호인 때가 있었다. 자석식을 거쳐 전화기를 들면 곧바로 교환원이 나와 상대방을 대 주던 공전식 시대까지였는데, 세칭 '백색전화' 한 대 값이 한때 웬만한 집 한 채와 맞먹었다. 판매가 금지됐던 '청색전화'는 상대적으로 쌌지만, 귀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전화기의 종류를 백색, 청색으로 나누어 불렀다. 그러나 실제 전화기의 빛깔은 '검정' 일색이었다.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은 청색전화는 전화 가입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는 원부의 표지 색깔이 청색이었고, 백색전화는 원부의 표지가 백색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교환원을 부르지 않고, 다이얼만 돌리는 자동식 전화가 등장하자 크게 환영을 받았다. 전화 값도 뚝 떨어졌다.

1965년 7월 5일 인천 시내에 자동전화 5천회 선이 개통되었고, 그로부터 8년 뒤인 1973년 7월 13일 전화 도입 75년 만에 경인간에 D.D.D. 자동전화가 개통됐다.

전화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 3월이었다. 청국에 유학 가서 전기학을 공부했던 상운(尙澐)이 귀국하면서 인천 제물포항으로 전화기 2대를 갖고 들어왔다.그때는 전화기를 '덕률풍(德律風)' 등으로 불렀는데, 영어 '텔레폰'에서 취한 가차명(假借名)이었다.

하지만 정작 전화를 개통을 한 것은 1898년 1월경이었다. 인천항 감리가 "영국 범선 3척의 입항 예정"을 외아문(外衙門)에 전화 보고했다는 1898년 1월 28일자 관보 이전에는 일체의 전화 관련 기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1898년 초 경인간 전화가 개통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민간인은 1902년에야 통화할 수 있었다. 인천 주재 일본영사관이 불법으로 전화를 가설하려 하자, 같은 해 6월에 우리 '통신원'이 서둘러 인천우편국에서 교환 업무를 시작했다. 그로써 인천은 관용ㆍ민간용 전화를 최초로 놓은 우리나라 전화의 시발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더불어 특기할 일은 '핸드폰' 시대를 맞아 1996년 1월 1일 인천에서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2년 1월 28일에는 제3세대 초고속 이동전화서비스(IMT-2000)를 역시 세계 최초로 개통했다는 점이다. 인천은 명실상부한 통신의 선구지인 것이다.

/조우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