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14> 이규상(李奎象)의 인천 죽지사(竹枝詞)
▲ 김홍도 그림에 나타난 어살(魚梁, 魚箭).
죽지사(竹枝詞)는 민간풍속을 소재로 한 악부시(樂府詩)이다. 중국에서 출발한 죽지사는 지역의 풍물이나 민속, 산천, 생업현장, 풍토적 특성 등을 대상으로 삼았기에 해당지역의 읍지(邑誌)나 지방지(地方誌) 같은 성격을 지닌다.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은 그의 아버지 이사질(李思質)이 인천부사로 있었던 시기(1765년), 인천 일대를 유람하고 시를 지었다. 지방의 현실과 지방민의 삶, 여성과 남성의 복식, 상인들의 분주함, 갯벌의 어로작업, 염전의 모습, 용유도 풍경, 무속의 현장, 손돌의 무덤, 관아의 풍류, 지방의 역사와 유적, 지방민에 대한 애정 등 <인주요> 9편과 <속인주요> 9편 도합 18편을 남겼다.

 
 仁州風俗似窮鄕(인주풍속사궁향) 인주 풍속은 궁벽한 시골과 유사해
 不識靑雲有玉堂(부식청운유옥당) 청운과 옥당을 알지 못하네
 女戴草囊男氈笠(여대초낭남전립) 여자들은 초랑을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전립을 쓰고
 日生忙出蛤魚場(일생망출합어장) 해 뜨면 바삐 조개와 물고기 잡으러 가네(<인주요> 1연)
 

작자는 인천에 대한 전반적 인상을 <인주요> 1연에 그리고 있다. 그에게 포착된 인천은 단어 그대로 '궁벽한 시골(窮鄕)'이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벼슬의 품계를 알지 못할뿐더러 여자는 풀로 만든 주머니(草囊, 다래끼)를 머리에 이고 남자는 전립을 쓰고 각각 조개를 캐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바삐 나갔으니, 인천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궁향(窮鄕)'이었다.

실제로 '어가(漁家)'라는 시문에 '산에 온 손님 만날 때마다 어물들 자랑하며, 그물 한번 던져 쥐면서 마땅히 녹봉이라네(山客逢時物物誇, 一網操權當爵祿)'라는 진술도 인천에 대한 인상을 반영한 것이다.

전립을 쓴 남자가 물고기 잡는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編箔排椽截海橫(편박배연절해횡) 발 엮어 말장에 늘어놓아 횡행의 바다 끊으니
 重重圈作內中城(중중권작내중성) 겹겹이 어살 안에는 내중성이 되었네
 潮來潮去須臾後(조래조거수유후) 바닷물 오고 간 잠깐 사이에
 螺蟹魚蝦戢戢盈(나해어하집집영) 소라, 게, 물고기, 새우가 모두 가득하네(<인주요> 3연)
 
 拿得鯔魚一尺全(나득치어일척전) 숭어 잡아보니 한 자나 돼
 瞥然飜手索頭懸(별연번수색두현) 별안간 손을 날려 머리 찾아 매다네
 忙從別浦潛身出(망종별포잠신출) 빠르게 별포를 따라 잠긴 몸 드러나니
 或恐看於箭主前(혹공간어전주전) 혹시 어살[魚箭] 주인이 볼까 두려워하네(<인주요> 4연)
 

3-4연은 '어살'이나 '어량(魚梁)' 혹은 '어전(魚箭)'의 어로활동을 소재로 한 시이다. 싸리, 참대, 나뭇가지 따위로 발을 엮어[編箔] 날개 모양으로 울타리를 치면 어살은 내중성(內中城)이 되기 마련이다. 밀물일 때 잠긴 듯한 내중성은 썰물일 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소라, 게, 물고기, 새우가 빠져나갈 수 없으니 '어살'은 단어 그대로 견고한 내중성이다.

4연은 어살이 소재이되 전자와 다르게 물고기의 입장이 반영돼 있다. '별포를 따라 잠긴 몸 드러나다(從別浦潛身出)'에서 '별포'는 일반적인 포구가 아니라 어살[魚箭] 안의 물고기가 모이는 특별한 공간을 지칭한다. 썰물에 의해 수위가 낮아지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의 몸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물고기 입장에 서면, 가장 두려운 것은 어살에 갇힌 채 주인의 눈에 띄는 것이다. 주인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날려 머리 찾아 매달을'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숭어의 돌출된 눈의 모양이 작자로 하여금 물고기의 처지에 서게 했던 셈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